1시간에 10만원… 400만 원짜리 ‘사설 전훈’도…스포츠 사교육 백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2일 16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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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에서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훅 동작이 필요하듯 타격도 공을 멀리 날리려면 제대로 된 테이크백(배트를 크게 휘두르기 위해 뒤로 당기는 동작) 자세가 필요합니다. 메이저리그 기술을 연구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자세를 가르칩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야구교실 수강생에게 금지약물을 주사해 구속된 전직 야구선수 이모 씨가 2월 야구 선수의 학부모들이 정보를 교류하는 인터넷 카페에 올린 글이다. 이 씨 외에도 야구 교실을 운영하는 수많은 전직 프로 선수·코치들이 이런 학부모 카페에 “원 포인트 레슨 합니다”라는 광고 글을 꾸준히 올린다. 읽어 보면 혹할 만하다. 투구나 타격 폼을 교정해 준다, 부상 선수 재활도 맡겨 달라는 내용부터 ‘국가대표 육상선수’ 출신이 주루 기술을 가르친다는 글까지 있다. 방법이 특이하고 구체적일수록 상담을 원하는 댓글이 많다.

프로 데뷔를 꿈꾸는 야구, 축구, 농구 등 구기종목 선수들 사이에서 사교육이 열풍이다. 스포츠 사교육 시장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시기는 정부가 학생 선수들의 학습권을 강조하던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야자’(야간자율학습) 금지에 학생들이 학원으로 모여든 것처럼, 학교에서 충분히 훈련을 할 수 없게 된 운동선수들이 사설 강습소로 몰리고 있다.

●“학교서 못 받는 훈련 학원 통해 받는 격”

학생 선수나 동호인을 대상으로 하는 야구교실이 생긴 게 최근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집중적으로 몰리기 시작한 시기는 2012년 이후라고 고등학교 야구 감독들은 입을 모은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현상이 등장했을까. 시간을 당시보다 1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정황 증거’를 찾을 수 있다. 2011년은 고교야구 주말리그가 처음으로 시행된 해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대한야구협회(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2010년 11월 공동으로 ‘고교야구 주말리그 추진 계획’을 발표했다.

이들 기관은 당시 발표한 자료에서 주말리그 시행 취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생 선수의 학력 저하, 인권 침해 등 부작용이 발생”하여 “공부하는 학생선수 육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었으므로 “(고교야구) 주말리그 전환 등 선진국형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평일 수업을 모두 듣도록 하고, 대회는 주말에만 연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9년 가까이 지난 현재의 평가는 어떨까. 서울의 한 고교 야구부 감독은 “선수들이 공부와 운동 양쪽을 다 하느라 제대로 쉴 수 없게 된 게 그때부터”라고 말했다.

주말리그 시행 전까지는 선수들이 오전에만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훈련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수업은 하루 종일 모두 참석해야 했다. 훈련은 수업이 끝난 뒤 시작했다. 학교에 야구 훈련 시설이 갖춰져 있으면 4시 쯤, 아니면 훈련장으로의 이동 시간을 고려해 5시 이후에나 방망이를 들었다. 야간 훈련과 주말 경기를 치르면서 선수들은 녹초가 됐다는 게 현장 지도자들의 얘기다. 전국대회의 경우 주말에만 경기를 치르면서 대회 기간이 한 달을 넘겼고, 숙박과 이동에 따른 비용 부담은 물론 투수의 경우 잘 하는 선수가 매주 던지는 ‘혹사 논란’도 불거졌다. 3년 만에 평일 개최 방식으로 돌아갔던 이유다.

●1시간 10만 원 ‘고액’… 400만 원짜리 ‘사설 전훈’도

‘스포츠 사교육’은 이런 ‘공교육’의 틈새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야구 선수로 프로에 가거나 대학에 진학하고 싶은 선수들에게 공부란 곧 야구 훈련이다. 학생 선수들은 성적을 더 올리고 싶은 학생들이 학원을 찾듯 사설 야구교실을 찾았다. ‘서울대 출신 강사의 소수정예반’과 ‘프로선수 출신 코치의 1대 1 레슨’은 같은 의미다. 학생 선수를 대상으로 한 레슨은 1회 1시간에 10만 원 남짓. 강사가 프로 출신이 아닐 경우 레슨비는 5만 원 정도까지 내려가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름값’이 있을 경우 시간 당 20만 원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야구 교실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해외로 눈을 돌리는 선수나 학부모도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 졸업을 앞둔 선수들은 ‘사설 해외 전지훈련’의 주요 고객이다.

과거 각급 학교 졸업을 앞둔 선수들은 상급학교 입학 전부터 가기로 정해진 학교에 가서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는 게 관행이었다. 하지만 교육당국은 이 같은 ‘선행학습’도 금지했다.

겨울방학동안 훈련받을 곳이 없어진 선수들의 학부모는 알음알음 정보를 교환하며 해외 전지훈련을 만들게 됐고, 이게 또 하나의 시장을 형성했다. 학부모 카페의 야구교실 홍보글을 뒤지다 보면 ‘졸업반 대상 동계야구 해외 전지훈련’ 광고글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3~4주 일정에 하루 100달러 정도가 드는데 항공료 등을 포함하면 최소 400만 원은 투자해야 전지훈련을 떠날 수 있다.

이런 ‘야구 사교육’의 효과는 어떨까. 또 다른 고교 야구부 감독은 “학생이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가는 걸 어떻게 막느냐”면서도 “다만 야구교실에 갔다가 자세나 습관이 망가져오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최소 3년 이상 학생들을 지켜보면서 장단점을 파악하고 가르치는 학교와 단발성 지도에 그치는 야구교실 훈련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불만은 학교 지도자뿐만이 아니라 프로구단 스카우트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 구단의 한 스카우트는 “예전보다 훈련량이 적은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전반적으로 신인들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다”고 푸념했다.

●야구도 축구도 사설 교실 흥행

축구는 ‘사교육’이 야구보다 훨씬 일찍 시작된 종목이다. 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이 1990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축구교실을 만든 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는 한 단계 진화한 축구과외가 등장했다. 월드컵 스타 박지성, 이영표, 이천수 등이 ‘축구의 엘도라도’ 유럽에 진출하면서부터다. “나도” “우리 아들도”…. 유럽에 가고 싶은 선수들과 부모들이 등장하면서 ‘기술축구’에 대한 갈증이 생겨났고 이를 간파한 지도자들이 새로운 개념의 축구교실을 만들기 시작했다. 기술이 없으면 성공할 수 없다는 막연한 기대를 축구지도자들이 잘 활용한 측면이 있다. 사실 기술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지 않으면 10세 이후엔 ‘천재적인 기술’을 습득하기 쉽지 않다는 게 정설이다.

서울의 한 기술축구학원의 경우 2000년대 중반에 개설했는데 현재 100여명의 초중고 선수들이 다니고 있다. 수강생은 초등학생 30%, 중학생 40%, 고교생 30% 정도의 비율이다. 이곳에서는 상대를 리프팅(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차는 기술)과 트래핑(날아오는 볼을 몸 가까이에 떨어뜨리는 기술)은 물론 각종 드리블 훈련을 기본으로 시킨다. 비용이 꽤 들지만 축구로 성공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지갑을 연다.

종목별로 ‘맞춤형 체력훈련’을 시켜주는 사설학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축구를 예로 들면 전체적인 근력에 근지구력, 심폐지구력을 키우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농구는 점프 능력이나 드리블 같은 특정 기술을 향상시켜준다. 운동을 시키는 부모라면 자녀들이 류현진(LA 다저스)이나 손흥민(토트넘)이 되기를 꿈꾼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따른다. 유명 스타 선수 출신들도 은퇴 후 프로팀 코치보다는 고소득이 보장되는 사교육 강사로 뛰어드는 경우도 많아졌다. ‘스포츠 사교육’ 시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야구교실, 축구교실 같은 사설 스포츠 학원은 전국에 얼마나 있을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이다. 프로야구를 주관하는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아마추어 야구를 총괄하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도, 프로야구선수협의회도, 한국프로야구은퇴선수협의회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현황 파악조차 안 되는 이유는 이 같은 사설 스포츠학원들을 관리감독할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그런 업종은 스포츠시설이라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일 것”이라고 말했고, 문체부는 “사설 교습에 해당되니 학원법 주무인 교육부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안다”고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가 주무인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에는 학원을 운영하려면 시도 교육청에 반드시 미리 등록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에서 말하는 ‘학원’은 학교 공부 등 각종 ‘공부’를 가르치는 학원과 음악 미술 등 ‘예능’을 가르치는 학원만이 대상이다. ‘체능(體能) 학원’은 빠져있다.

문체부가 주무인 ‘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골프장, 스키장, 자동차 경주장 등은 사전 등록이 필요한 체육시설이며 야구장, 빙상장, 골프연습장, 당구장, 체력단련장, 무도학원 등을 신고가 필요한 체육시설로 정해두고 있다.

이처럼 야구장은 신고 대상이지만 야구교실은 신고 대상이 아니다보니 야구교실, 축구교실을 포함해 태권도학원, 검도학원 같은 사실상의 ‘체육 학원’들은 모두 현재까지 어느 부처의 관리감독도 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예외는 딱 하나 있다. 댄스스포츠 교습소만 교육부와 문체부의 관리감독을 양 쪽에서 받고 있다. 교육부도 댄스스포츠 강습소는 체육계열 학원 중 유일하게 학원법의 적용을 받도록 했고, 문체부도 체육시설법에 ‘무도(舞蹈)학원’을 체육시설로 분류해 의무적으로 신고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관리 사각지대’가 넓을수록 사고 가능성도 높아진다.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모 씨가 자신이 운영하는 야구교실에 다니는 학생 선수들에게 강제로 금지약물을 맞힌 사건도 관리 부재(不在)도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 씨는 금지약물을 자신이 직접 학생들에게 주사한 행위 때문에 학원법이나 체육시설법 위반이 아닌 ‘약사법 위반’ 혐의를 받고 구속됐다.

지금처럼 아무런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상황이 계속되면 이들 사설 스포츠 교실이 ‘입시 브로커’처럼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최동호 스포츠문화연구소 소장은 “프로 입단을 위해 금지약물까지 강제로 주사했다는 사실은 이들 사설 스포츠 교실이 성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라며 “적절한 감시와 제재가 없을 경우 상급학교나 구단 입단을 알선하는 불법 브로커로 변질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임우철 인턴기자 서강대 프랑스문화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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