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원 20돌[횡설수설/구자룡]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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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2월 북한 회령군의 공장 노동자 김경호 씨 등 일가족 17명이 한국에 들어왔을 때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다.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한 직후 기자회견이 열렸고 각계 성금이 밀려들었다. 이듬해에는 대기업의 이미지 광고에도 나왔다.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29일간 중국 대륙을 종단해 홍콩으로 잠입한 탈북 과정이 한 편의 드라마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당시는 남북이 치열한 체제 경쟁을 벌이던 시기였다. 북한을 의식해 탈북단체에 대한 정부 지원도 줄고 있다는 요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풍경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탈북민 수가 늘면서 적응과 정착 교육을 위해 설립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사무소’, 즉 하나원이 20년을 맞았다. 순서대로 기수가 부여돼 지난달 256기까지 배출됐다. 그런데 12주간 실내 교육, 현장 체험 등으로 구성되는 하나원 운영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만이 적지 않다. 최근 동아일보가 하나원을 나온 탈북민들에게 물은 결과 ‘교육 내용과 수준이 맞지 않아 지루했다’ ‘탈북민 대다수가 도시 출신인데 산골에 가둬 놓고 비현실적 교육을 한다’는 부정적 답변도 적지 않았다. 초기에는 모든 수료생의 주민등록번호가 하나원 주소지를 기준으로 부여돼 인근 주민까지 탈북민으로 오인 받아 중국 비자를 거부당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은 정착지 기준으로 주소를 다양화했다.

▷탈북민은 이제 3만3000명을 헤아린다. 여전히 굶주림을 견디다 못한 ‘경제난민’이 많지만 좋은 교육환경을 찾아 온 ‘맹모(孟母)형 탈북’도 많아졌다. 2016년 7월 홍콩에서 열린 수학올림피아드에 참가했다가 탈북한 이정열 군은 수학 교사인 부친이 “한국으로 가라”고 권유해 넘어왔다. 이듬해 1월 탈북한 태영호 주영 북한공사도 아들 교육이 큰 이유였다. 최근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한 20대 여성 탈북자는 “북한에선 대학생에게도 1년에 몇 개월씩 노동을 시킨다”며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탈북 이유로 들었다.

▷하나원은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넘어온 탈북민을 한국 사회가 처음 맞이하는 곳이다. 올해 20주년 기념식은 통일부 장차관과 남북하나재단 이사장도 참가하지 않은 채 쓸쓸하게 열렸다.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이나 동남아시아 어딘가에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는 탈북민들이 “우리를 받아주겠나” 하는 의구심을 갖지 않도록 따뜻하게 껴안아주는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하나원은 탈북민들이 불안을 달래고 진정 ‘하나’됨을 준비하는 안식처가 돼야 한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하나원#탈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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