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와 슬픔-공포도 느껴”…‘기생충’ 곱씹는 관객들, 세대별 반응도 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30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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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 ‘기생충’ 스틸컷
“영화의 만듦새와 스타일로 볼 때 당연히 칸에 초청될 줄은 알았죠. 그런데 이 정도까지는 예상 못했어요. ‘기생충’이 관객을 행복하게 만드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달라진 한국 관객들의 힘이죠.”

영화 ‘기생충’ 개봉을 앞두고 제작사인 바른손이엔에이의 곽신애 대표(51)도 500만 명, 잘 해야 700만 명을 예상했다고 한다. 극장가 비수기인 5월 개봉작 가운데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던 2011년 ‘써니’(740만 명)를 기준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평가나 흥행 면에서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영화는 29일 기준 국내 관객 940만 명을 돌파했다. 흥행세가 다소 꺾였다는 관측에도, ‘기생충’은 이르면 이번 주 ‘괴물’(2006년)에 이어 봉준호 감독(50)의 두 번째 ‘1000만 영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예술적면서 대중적인 ‘기생충’의 기록들

평단과 관객을 모두 사로잡았다는 점에서 ‘기생충’이 영화계에 주는 시사점은 적지 않다. 그간 칸 국제영화제에 부름을 받은 한국 영화들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관객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2002년)을 시작으로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16편의 한국영화들 중에, 그나마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년)가 428만 명으로 가장 흥행에 성공했다. 박 감독의 ‘올드보이’(2003년)와 ‘박쥐’(2009년)가 각각 327만 명, 220만 명이 관람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년)나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년)은 226만 명, 160만 명에 그쳤다. 반면 순제작비 135억 원인 ‘기생충’은 손익분기점을 5일 만에 가뿐히 넘겼다. 강유정 영화평론가의 말처럼 “봉 감독 작품이라 상을 받았어도 재미있을 것이라는 관객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봉 감독은 “예술성과 대중성을 정해놓고 작품에 들어가지 않는다. 두 부분을 나눠 저울질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생충’을 ‘피아노’(1993년)나 ‘펄프픽션’(1994년), ‘어둠 속의 댄서’(2000년)와 비교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모두 흥행에 성공했던 작품이었다.

반응은 해외에서도 뜨겁다. 지난달 5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개봉한 ‘기생충’은 개봉 18일 만에 관객 수 68만 명을 돌파했다. 역시 봉 감독의 작품인 ‘설국열차’(2013년)가 갖고 있던 역대 한국영화 관객 수 1위 기록을 넘어섰다. 심지어 지난달 17일엔 사상 최초로 프랑스 전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상영관도 180여 개에서 300개 이상으로 늘어났다. 현지 언론들은 “‘펄프픽션’ 이후 오랜만에 우리를 찾아온, 가장 대중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황금종려상 수상작임을 여실히 증명하는 중”(프랑스컬처) “가족영화의 전통을 살리면서도 특유의 다양한 천재성을 발휘한다”(르몽드) 등 호평을 쏟아냈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각국에서 개봉이 이어지며 ‘기생충’ 열풍은 세계로 퍼져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칸 국제영화제 필름 마켓에서 192개국에 팔렸던 ‘기생충’은 이후 10개국에 추가로 판매됐다. 세계 202개국 판매는 역대 한국영화 1위 기록이다. “‘기생충’은 아카데미영화제 외국어영화상을 넘어 감독상과 각본상 후보에도 들 수 있다”(뉴욕타임스)는 예상까지 나온다. 향후 각종 영화제에서 ‘상복’을 누릴 일만 남았다.

공감하고 논쟁하는, 관객들의 영화 곱씹기

‘기생충’은 전작 ‘괴물’, ‘마더’(2009년)보다 메시지가 명료하다. 그러면서 ‘설국열차’나 ‘옥자’(2017년)에 비해 반전의 충격이 강하고 서사의 몰입도도 높다. 해외에서 찬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짜빠구리’ ‘반지하’ 등 영화 곳곳에 “한국인만 100% 이해할 디테일”들로 가득해 친근하다. 화룡점정처럼 복선마저 깔끔하게 회수돼 “완성도가 높다”는 평이 흘러나온다.

뭣보다 빈부격차라는 세계적 이슈를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냈다.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찌르는 반지하에 사는 전원 백수 기택(송강호)네, 언덕 위 대저택에 사는 박 사장(이선균)네는 모두가 선악의 이분법으로 쉽게 재단하기 힘든 입체적인 인물들. 봉 감독은 “가난한 가족도 적당히 뻔뻔하고, 부잣집 가족도 누군가를 해코지하는 악당이 아니다. 적당히 나쁘고 적당히 착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 나오는데도 끝내 극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두려움과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실제로 “두 가족을 넘나드는, 감정 이입을 경험했다”는 관객 반응이 많았다.

“다양한 토론, 해석이 공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윤성은 영화평론가)되기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관람 후기를 공유하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영화 속 장치에 대한 해석과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변기가 높은 곳에 위치한 반지하의 디테일을 정확하게 구현했다” “대중교통을 탈 때 정말 ‘냄새’를 맡아봤다” 등 소소한 경험을 털어놓는 이들도 많았다. 박 사장과 연교(조여정)의 애정행위 등을 언급하며 15세 관람가인 ‘기생충’의 관람 등급을 문제 삼기도 했다.

세대별 반응도 남달랐다. 20, 30대는 기우(최우식)의 팍팍한 삶에서 ‘내 집 마련’의 어려움과 청년 실업을 공감했다. 40, 50대는 기택을 통해 가장의 무게감을 떠올렸다. CGV리서치센터에 따르면 40대 이상 관람객 비율은 36.5%, 재관람율도 4.9%에 이른다. 영화를 3번 봤다는 김종민 씨(42)는 “볼 때마다 다른 감상을 전해주는 작품이다. 처음 볼 땐 재미를, 두세 번째엔 슬픔과 공포를 가져다줬다”고 했다. 곽 대표도 “‘킬링타임 용’ 영화와 달리 극장을 나오면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소비를 적극적으로 해준 관객에게 감동 받았다”고 한다.

영화적 체험을 온전히 느끼기 위한 관객들의 ‘자발적 마케팅’도 잇따랐다. 개봉 전 봉 감독은 이례적으로 “스토리 전개를 최대한 감춰주신다면 제작진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라며 한국어와 영어, 프랑스어로 된 편지를 언론에 공개했다. 프랑스에선 박 사장이 아내 연교에게 귓속말을 하는 장면에 “Si tu me spoiles la fin, je te tue!”(스포일러하면, 널 죽여 버리겠어) 문구를 달아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강 평론가는 “영화를 봐야 충격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는 관객들의 공감대가 형성돼 순기능적인 마케팅 효과가 작동했다”고 분석했다. 봉 감독도 지난달 23일 800만 명 돌파 기념 GV(관객과의 만남) 행사에서 “스포일러를 자제해달라는 부탁을 잘 지켜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영화계 ‘선한 영향력’ 계속돼야

봉 감독은 “우리만 유별난 건 아니다”고 겸양했지만, ‘기생충’은 모든 스태프들과 표준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주52시간을 준수한 ‘좋은 영화 만들기’의 표본이 됐다. “60여 회 차 사이즈”였지만 제작비상승을 감수하며 77회 차에 촬영을 마쳤다. 폭염에 아역배우가 뛰노는 장면을 촬영할 수 없어 컴퓨터그래픽(CG)으로 처리한 건 유명한 일화. 윤 평론가는 “첫 표준근로계약이 아닌데도 관심을 끄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영화 제작진의 처우에 무관심했다는 반증”이라고 했다.

윤제균 감독의 ‘국제시장’(2014년)을 시작으로 표준근로계약이 정착돼 온 영화계에 비해, ‘기생충’은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지에 있던 방송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방송 분야 표준계약서 사용지침’을 만들었고 ‘지상파방송 드라마 제작환경 개선 공동협의체’가 출범해 드라마 제작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표준근로계약을 맺은 작품 비율은 2015년 36.3%에서 지난해 77.8%로 늘었다. 물론 10억 원 이하 저예산 독립영화 등은 조사대상에서 빠져있어 사각지대도 여전하다. 한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대형 투자사가 없는 영화들은 여전히 근로기준법대로 영화를 만들기 버거운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기생충’의 성공을 계기로 다양한 영화적 시도를 용인하는 업계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시장의 다양성이 감소되고 흥행 공식을 답습한 유사한 영화가 재생산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의미다. 곽 대표도 “젊은 감독들의 다양한 시도로 가득 찬 2003년 한국영화계처럼, ‘기생충’이 그런 분위기 정착의 마중물이 돼야한다”는 말을 남겼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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