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ILO 비준” 공언 文대통령, 기운 운동장 바로잡는 게 먼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7일 00시 00분


코멘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스웨덴 스테판 뢰벤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나의 대선 공약이기도 하고, 한국의 전체적인 패러다임 전환에 속한다”고 말했다. 다음 달에 결사의 자유(제87, 98호)와 강제노동 금지(제29호) 등 3개 협약에 대한 정부안을 확정하고, 올 9월 정기국회에서 비준 동의안과 관련법 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정부 방침을 재확인하며 힘을 실어준 것이다.

ILO 핵심협약 비준은 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지만 경영계와 노동계의 시각차가 매우 크다.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노사관계 제도·관행 개선위원회에서의 오랜 논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안을 만들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4월 단체협약 유효기간 3년으로 연장,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등 공익위원안을 제시했지만 양측 모두 반발했다. 이런 상황에서 비준을 밀어붙이면 갈등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 ILO 핵심협약 비준은 필요하지만 자칫 이미 기울어진 비정상적 노사관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을 정부는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 ILO 협약 비준으로 해직자, 실직자까지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할 수 있게 되면 그러지 않아도 습관적 파업을 계속해온 강성노조에 더 힘이 실리게 되고 노사관계의 정치화가 극심해질 것이라고 경영계는 우려한다. 더구나 ILO 협약은 해직자의 노조 가입을 금지하는 실정법과 상충한다. 이런 국내법과 협약의 충돌을 막기 위해 당초에는 국내법을 수정한 후 비준안을 처리하려 했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선비준, 후입법을 추진하니 앞뒤가 바뀐 셈이다.

ILO 협약의 근본 정신은 노조 가입 여부, 전임자 수 등 노사문제는 모두 노사 자율로 하자는 것이다. 취지가 좋더라도 기업과 노동문화가 유럽과 다른 우리 현실에서 어떤 부작용이 생길지 알 수 없다. 다소 더디게 가더라도 이런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 보완책을 마련하고, 경영계의 동의를 구한 뒤 비준을 추진해야 한다. 한두 달 만에 속전속결로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ilo 핵심협약 비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