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대립 넘어서자는 文대통령, ‘월북 김원봉’ 논란 불지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현충일 추념식]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 참배를 마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19.6.6/뉴스1 © News1
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현충탑 참배를 마친 후 자리로 향하고 있다. 2019.6.6/뉴스1 © News1
“저는 보수이든 진보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제64회 현충일 추념식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근 “좌우의 이념, 적대에서 탈피하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의 연장선이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이런 뜻과 달리 이날 정치권에서는 현충일 추념사에 처음으로 등장한 ‘약산 김원봉’을 놓고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가 의도했던 “좌우 통합”의 메시지 대신 김원봉을 둘러싼 논쟁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 文 “대한민국, 보수와 진보 노력 함께 녹아 있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보수와 진보의 역사가 모두 함께 어울려 있다”며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시대’로 대표되는 보수 진영의 경제 발전 공로와, ‘6월 민주항쟁’으로 대표되는 진보 진영의 민주주의 발전 공로를 서로가 인정하고 품어야 한다는 의미다.

또 문 대통령은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우리는 누구나 보수적이기도 하고 진보적이기도 하다. 어떤 때는 안정을 추구하고, 어떤 때는 변화를 추구한다”고 말했다.

그런 문 대통령은 추념사 도중 약산 김원봉을 거론했다.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의열단으로 활동하며 무장 투쟁을 했던 김원봉은 광복 이후인 1948년 월북해 북 국가검열상, 노동상 등을 거쳤다. 1952년에는 6·25전쟁에서 공훈을 세웠다며 김일성으로부터 훈장을 받아 그간 국가보훈처의 국가유공자 선정에서 제외됐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페이스북을 통해 “6·25 남침 공로까지 북한으로부터 인정받은 김원봉을 문 대통령은 또다시 치켜세웠다. 다른 날도 아닌 현충일이다. 꼭 그러셔야 했느냐”며 “대통령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도리마저 저버린 것은 아닌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6·25 참전 용사 가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비래당 이종철 대변인은 논평에서 “(문 대통령이) 말은 보수, 진보가 없다고 하면서 (김원봉처럼) 사실은 보수, 진보 편을 갈라놓을 일방적인 주장을 무늬를 바꿔가며 이어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야당은 문 대통령의 언급을 계기로 여권이 본격적으로 김원봉을 서훈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바른미래당 지상욱 의원은 “보훈처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김원봉에게 독립유공자 서훈을 시도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회 정무위원으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 (서훈을) 끝까지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 보수야당 김원봉 언급 반발에 靑 당혹

문 대통령이 이날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거론한 것은 일단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자는 취지에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김원봉을 거론하기 전 “스스로를 보수라고 생각하든 진보라고 생각하든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이런 인식은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사나, ‘빨갱이’를 언급하며 “변형된 색깔론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3·1절 기념사의 연장선에 있다.

동시에 정치권 일각에선 문 대통령이 정권의 운명을 가를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며 확장성을 강조하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지지층을 결집하고 보수의 반발을 부를 휘발성 강한 이슈를 꺼내 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 대통령은 야당 대표였던 2015년 8월 페이스북에 “광복 70주년을 맞아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야당의 반발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당혹스러워하면서 “취지와 달리 해석됐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보수 진영에서 높게 평가받는 채명신 장군과, 진보 진영에서 평가받는 김원봉을 함께 언급해 애국에는 진보, 보수가 없다는 점을 설명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봉 논란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도 엇갈렸다. 이헌환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의 적대적, 냉전적 사고에서 벗어나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 무정부 무장투쟁 활동을 한 분들에 대해서도 평가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은 “현충일은 6·25전쟁 이후 각종 북한 도발로 순직한 호국영령을 기리는 날인데, 꼭 김원봉을 언급했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장관석 기자
#월북 김원봉#문재인 대통령#현충일 추념식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