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영식] 美-中 무역갈등에서 살아남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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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강요받는 중견국의 고민… 한쪽 편들기보다 원칙 대응 필요

김영식 국제부장
김영식 국제부장
전통적인 미국의 ‘고립주의’로 회귀하는 듯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3년 차에 들어가면서 세계 곳곳에서 곡소리가 나오는 듯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그에겐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국제사회의 안정을 뛰어넘는 가장 중요한 가치다. 문제는 미국만 플레이어가 아닌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적 자신감을 바탕으로 도전장을 낸 중국,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려는 러시아 등 강대국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몇 년 전까지 신냉전으로 거론되던 단일한 대결 전선은 중국, 러시아 등 기존 강대국은 물론이고 이들이 간접 지원하는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로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중동까지. 이른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국제사회에 전반적으로 투영되는 모습이랄까.

관세 부과로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보복전으로 변질되면서 자동차, 부품 등 상품 교역을 넘어 금융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냉전 때 미국이냐 옛 소련이냐를 선택해야 했던 진영(陣營) 외교는 어느덧 중국의 글로벌 통신망 사업자 화웨이를 쓰냐 아니냐의 갈림길로 중견국과 약소국들을 내몰고 있다. 우리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한 일본, 영국을 비롯해 우방 및 동맹국 모두가 화웨이 전선을 두고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런 새로운 현실에 전문가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최신호에서 ‘이건 강대국 경쟁이 아니다’라는 기고를 통해 과거와 달라진 세계에선 다른 대응법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마이클 마자르 랜드연구소 선임 정치분석관은 “지금 세계의 모습은 군사적 충돌을 특징으로 하던 과거의 ‘강대국 경쟁’이 아니다”라며 “지금 벌어지는 안보 문제는 (과거처럼) 강대국 간 의심 때문이 아니라 현 국제 체제에서의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는 중국과 러시아에 휘둘리면서 빚어진다”고 진단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도자 역할을 하면서 형성된 국제질서에 의미를 두지 않아서 벌어진 일이기도 하다. 만약 워싱턴이 스스로를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수많은 국가 중 하나의 체스 플레이어 정도로 여긴다면 미국에도 다시 부정적인 영향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우려가 가득하다. 이런 상황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저서인 ‘거대한 체스판’이 제시했던 것처럼 미국만이 누리던 압도적인 플레이어의 자리가 아니라 그저 여러 경쟁자의 하나에 불과한 처지로 바뀌는 것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처럼 고래(강대국)가 싸우는 시기엔 새우(중견국, 약소국)의 등만 불쌍해진다. 선택을 강요받는 중견국과 약소국이 자칫 한쪽의 부탁만 챙기다간 추크츠방(Zugzwang)의 덫에 걸릴 수 있다. 추크츠방은 체스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말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처지를 뜻한다.

국제질서와 규칙을 만들던 강대국들이 협의 대신 갈등으로 나설 때 이를 준수했던 국가들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자르 분석관은 “(지금은) 말썽꾼이라 해도 규칙을 따르고 통제되지 않은 요구를 할 수 없는 세상”이라며 “국가들이 경쟁해도 국제기구, 규칙, 규범이 중재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암울한 국제정세를 이겨낼 방안도 제시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만난 제임스 최 주한 호주대사가 했던 “중견국들이 지역 내 규칙을 근거로 한 질서(rules-based order)를 바탕으로 협력해야 한다”는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혼돈에 빠질수록 현재의 국제법과 규칙이 분명한 길을 보여준다는 뜻이었던 것 같다. 그런 협력이야말로 선택을 강요받는 중견국과 약소국이 추크츠방을 피할 생존법이 될 것이다.

김영식 국제부장 spear@donga.com
#미중 무역전쟁#도널드 트럼프#화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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