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깨고 “굿샷”… 필드 점령한 ‘올빼미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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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와 함께 찾아온 ‘야간 골프’
주말 절반 비용으로 라운드 “퇴근하고 오후7시 타임 가능”
골프장도 밝은 조명 설치 화답… ‘그린피+치맥’ 등 서비스 상품도



최근 한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면서 야간 골프 라운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시원한 밤공기, 낮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그린피, 색다른 서비스 등이 묘미로 꼽힌다. 경기 파주시 베스트밸리골프장에서 야간 골프를 즐기고 있는 골퍼들. 파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최근 한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돌면서 야간 골프 라운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시원한 밤공기, 낮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그린피, 색다른 서비스 등이 묘미로 꼽힌다. 경기 파주시 베스트밸리골프장에서 야간 골프를 즐기고 있는 골퍼들. 파주=김동주 기자 zoo@donga.com
“굿 샷∼.”

금요일이던 24일 오후 8시 40분 경기 파주의 베스트밸리골프장 7번홀(파5) 티박스. 새까만 밤하늘 아래 흰색 공 하나가 빨랫줄처럼 날아가 페어웨이에 떨어졌다. 티샷을 마친 여성 국악인 방모 씨(59)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그는 지인 3명과 골프에 나섰다. 30년 넘는 구력에 한때 싱글 핸디캡이었던 방 씨는 “낮에 너무 더워 힘들었는데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린다. 풀벌레, 개구리 우는 소리도 들으며 불금을 제대로 즐겼다”며 웃었다.

이날 서울의 한낮 최고기온은 32도를 넘었다. 방 씨가 골프를 친 야간에는 기온이 20도 내외여서 서늘한 느낌에 긴팔 티셔츠를 입어야 할 정도였다. 최근 이 골프장의 3부(오후 3시 50분 이후 티오프) 시간대는 30팀 가까운 예약이 꽉 찰 정도로 골퍼들이 몰려들고 있다.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야골(야간 골프)’이 주목받고 있다. 쾌적한 환경에 비용도 저렴해 주말보다 절반 가까운 가격으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골프장도 많다. 직장인은 반차를 내거나 퇴근한 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골프장 부킹 서비스 업체인 XGOLF에 따르면 5월 야간 골프 라운드 예약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회사원 허모 씨(42)는 최근 서울 마포구 직장에서 일을 마친 뒤 인천 스카이72골프 앤 리조트에서 야간 골프를 즐겼다. 허 씨는 “알뜰하게 시간을 활용했다. 주말에 골프 치려면 차도 많이 막히는데 밤에는 교통체증도 없다”며 “티타임이 오후 7시 6분이라 소풍 온 듯 카트에서 김밥을 먹는 재미도 남달랐다”고 말했다.


밤에도 대낮같이 환하다는 의미로 ‘백야 골프’라는 타이틀을 내건 스카이72는 골프장 조명탑을 30m 간격으로 설치했으며 라이트 숫자만 해도 약 2500개에 이른다.

베스트밸리골프장은 평창 겨울올림픽 조명을 책임진 블루카이트가 시공을 맡았는데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의 조도는 티박스 250럭스, 페어웨이 150럭스, 그린 350럭스 등이다. 주택 거실의 조도가 150럭스이고, 학교의 일반 교실 조도가 300럭스 정도다. 야간 플레이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수도권의 한 골프장 캐디로 일하는 이모 씨는 “야구 야간 경기에서 홈런 볼처럼 타구의 궤적이 똑바로 잘 보인다. 공 찾기도 쉽다”고 말했다.

올빼미 골퍼를 유혹하기 위한 차별화된 서비스도 많다. 강원 횡성의 알프스대영골프장은 ‘치맥(치킨과 맥주)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1인당 그린피 8만9000원에 팀당 치킨 한 마리와 맥주 4캔을 제공한다. 경기 가평 크리스탈밸리골프장은 18홀 그린피와 저녁 식사(냉이조갯국, 능이버섯한우국밥 등) 패키지 상품이 1인당 9만∼10만 원이다. 충북 청주의 이븐데일골프장은 야간 라운드 때 생맥주 한 잔 이상의 주류를 주문하면 통닭 한 마리를 공짜로 준다. 강원 홍천 비콘힐스골프장에서 직장 동료들과 야간 라운드를 다녀온 회사원 김현성 씨(38)는 “그린피가 저렴한데 무조건 노캐디여서 지갑 부담도 덜었다. 도시락도 공짜로 줘서 홀마다 조금씩 먹으니 좋았다”고 말했다. 스카이72는 해충방제 시스템을 가동해 여름철 불청객인 모기, 날벌레 등의 방해를 줄여 골퍼들의 집중력을 높여주고 있다.

야간 골프 라운드는 모르는 사람과 함께 공을 치는 ‘조인 문화’도 활발하다. 주중에 네 명이 한 팀을 이루기가 어려울 수도 있어 골프장 홈페이지나 부킹 사이트 등을 통해 동반자를 찾는 ‘혼골족’이 늘어나고 있다. 인천의 한 골프장 캐디인 박모 씨는 “야간에는 골프 열정이 뜨거운 실력파 고수들이 많아 일하기도 편하다”고 말했다.

야간에는 밤이슬의 영향으로 비거리가 주간보다 10∼20m 짧아지고 물기 먹은 그린의 스피드가 줄어들게 돼 클럽 선택과 퍼트 시 이를 감안해야 한다. 낮보다는 퍼팅할 때 공이 덜 구르게 돼 다소 강한 느낌으로 스트로크하는 게 좋다.

불야성을 이룬 스카이72 골프 앤 리조트
불야성을 이룬 스카이72 골프 앤 리조트
야간 골프만의 매너도 요구된다. 스카이72 명운용 지배인은 “그린에서는 상대방 퍼팅 라인에 다른 동반자의 그림자가 들어가면 자칫 퍼팅을 힘들게 할 수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파주=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야간 골프#혼골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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