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무인 점포’ 공습… 지역시장 결성해 맞서는 뉴욕 상인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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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현장을 가다]
제2본사 철회 후 ‘아마존 고’ 개점, 전통 유통점포는 수천 곳 폐점 속출
지능형유통-푸드홀 등 변화 움직임… 트럼프 “소상공 위한 투자 약속”

아마존은 뉴욕 맨해튼 쇼핑몰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계산대가 없는 ‘무인 상점‘ 아마존 고 매장을 열었다. 스마트폰 앱을 대고 입장한 뒤에 물건을 들고 나오면 자동 결제가 된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아마존은 뉴욕 맨해튼 쇼핑몰 브룩필드 플레이스에 계산대가 없는 ‘무인 상점‘ 아마존 고 매장을 열었다. 스마트폰 앱을 대고 입장한 뒤에 물건을 들고 나오면 자동 결제가 된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 아마존이 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 다시 돌아왔다. 2월 ‘뉴욕 제2 본사’ 건설 계획을 전격 철회한 지 석 달 만이다. 이번에는 일자리 2만5000개를 만드는 본사 건물 대신 계산대와 계산원이 없는 ‘무인 상점 모델’인 ‘아마존 고(Amazon Go)’ 매장을 들고 뉴욕을 찾았다. 뉴욕은 미국 대도시 중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시카고에 이어 아마존 고 모델의 네 번째 실험장이 됐다. 첨단 기술로 무장하고 맨해튼 도심까지 진출한 아마존 고의 등장에 뉴욕 유통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 계산대 없어 “물건 훔쳐 나오는 기분”

아마존 고 서비스가 기존 편의점이나 식품점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하려고 11일 오후 3시경 맨해튼 남서쪽 배터리파크의 브룩필드 플레이스 쇼핑몰 2층 매장을 찾았다. 입구엔 관광객 10여 명이 사진을 찍느라 시끌시끌했다. 아마존 고에 입장하려면 스마트폰에 ‘아마존 고’ 앱을 깔고 신용카드 정보를 입력해야 했다. 서울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매장 입구에서 앱을 켜고 바코드를 갖다 대자 출입문이 열렸다.

입장한 뒤에는 일사천리였다. 매장은 작은 편의점 크기인 120m²(약 36.3평)에 불과했다. 진열대에는 음료, 샐러드, 샌드위치 등 냉장 상품과 빵, 스낵 등이 있었다. 물건을 골라 나오면 된다. 매장에 설치된 수백 대의 카메라와 센서가 구매 행동을 확인하고 자동으로 결제하기 때문이다. 한 고객은 “물건을 훔쳐서 나오는 기분”이라고 혼잣말을 했다. 일부 고객은 계산대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게 어색했던지 출구 앞에서 머뭇거렸다. 물건을 골라 나오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계산대에 긴 줄을 서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점심시간이 빠듯한 직장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무인 계산 서비스의 오작동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른 매장에서 산 과자와 음료를 가방에 담고, 이곳에서는 탄산음료 한 병을 들었다. 기자의 앱으로 매장에 입장한 동행자에게 작은 캔디를 주머니에 넣게 했다. 그렇게 쇼핑을 끝내고 매장을 떠난 지 30분쯤 지나자 영수증이 도착했다는 스마트폰 알림이 울렸다. 탄산음료와 캔디가 정확하게 청구됐다. 영수증을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것 빼고는 불편함이 없었다.


○ “무자비한 사업 모델” 논란

아마존 고는 새로운 서비스로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뉴욕 유통업계는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다. 아마존이 3조 원이 넘는 지원금을 받으며 ‘제2 본사 건설’을 약속했다가 철회하더니 지역 상인들의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아마존 고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식품 및 상가노동자 국제연맹(UFCW)의 마크 페론 회장은 성명을 통해 “아마존의 무자비한 사업 모델이 엄청난 일자리 손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현금을 받지 않는 무인 계산대 점포가 신용카드나 은행 계좌가 없는 현금 거래 고객을 차별한다는 논란도 커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올해 펜실베이니아주와 뉴저지주에서 ‘현금 없는 가게(Cashless store)’를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다. 뉴욕, 샌프란시스코, 시카고, 워싱턴에서도 비슷한 법안을 논의 중이다. 이를 의식해서일까. 뉴욕 아마존 고 매장은 현금을 받는다.

무인 매장 모델이지만 입구 보안요원과 안내 직원, 매장 내 상품 진열 직원 등 4명이 작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 직원에게 “현금 결제가 가능하냐”고 묻자 “입구 직원에게 얘기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면) 계산대 없는 상점을 온전히 경험할 수 없다”며 웃었다.


○ 월마트, ‘사람+기술’ 모델로 대응

맨해튼에 있는 신발 할인 판매점인 ‘페이리스 슈소스‘ 매장에 폐업 세일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요란하게 걸려 있다. 이 회사는 북미 지역 2500개 점포 폐점 절차를 밟고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맨해튼에 있는 신발 할인 판매점인 ‘페이리스 슈소스‘ 매장에 폐업 세일을 알리는 안내 문구가 요란하게 걸려 있다. 이 회사는 북미 지역 2500개 점포 폐점 절차를 밟고 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미국에서는 ‘유통업의 종말(retail apocalypse)’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아마존 등 신(新)유통에 밀리는 전통 유통업계의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CNN에 따르면 지난해 아마존의 유통사업 매출은 350억 달러(약 41조6185억 원) 늘었는데, 이는 점포 7700개 매출에 해당한다. 지난해에는 감세와 재정 지출 확대로 유통업이 회복세를 보였지만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다하는 올해는 유통업계에 한파가 닥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코어리서치에 따르면 올 들어 4월까지 유통업체들이 발표한 점포 폐점은 5994건으로 지난해 전체 폐점 건수(5864건)를 넘어섰다. 이런 추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 UBS는 미국 내 온라인 쇼핑 매출은 현재 전체 유통업 매출의 16%에서 2026년 25%로 증가하고 의류, 가전매장 등 7만5000개의 점포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했다.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은 전통 유통회사들의 경쟁 전략까지 바꾸고 있다.

아마존의 ‘무인화 공세’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전통 유통업계의 대표 주자인 월마트다. 월마트는 맨해튼 아마존 고 매장 개업 2주 전쯤 차로 1시간가량 걸리는 레빗타운 매장에 ‘지능형 유통 실험실’을 열었다. 전자상거래 회사인 아마존이 계산대를 없애는 실험에 주력하는 반면 월마트는 센서와 인공지능(AI) 기술로 재고 관리 등 직원의 업무를 지원하는 기술을 실험하는 수렴 현상이 발생하는 셈이다. 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설비 투자를 실험하고 있는 것이다. 매장을 돌며 재고를 확인하는 AI 로봇이나 바닥을 닦는 청소 로봇도 전국 매장에 배치하고 있다.

창고형 매장으로 유명한 이케아는 지난달 15일 맨해튼 미드타운에 온라인 쇼핑과 접목한 ‘쇼룸’ 형태의 신개념 매장을 냈다. 직원에게 “물건을 골라 바로 가져갈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창고가 없어 쇼룸에 진열된 가구 등은 바로 가져갈 수 없다. 주문하면 배송해준다”고 말했다.


○ ‘뭉치거나 바꾸거나’ 그들만의 생존법

13일(현지 시간) 1940년 문을 연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공설시장인 에식스 마켓이 79년 만에 현대식 푸드홀 형태로 새 단장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13일(현지 시간) 1940년 문을 연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드의 공설시장인 에식스 마켓이 79년 만에 현대식 푸드홀 형태로 새 단장했다. 뉴욕=박용 특파원 parky@donga.com
높은 임대료, 최저임금 인상, 아마존 등 신(新)유통업에 밀리던 뉴욕 자영업자들도 힘을 모아 대응하기 시작했다. 13일 맨해튼 남동부의 낙후지역인 로어이스트사이드 지역에 1955년 이후 뉴욕에서 처음으로 공설시장이 다시 문을 열었다. 1940년대 개장했던 ‘에식스 마켓’이 길 건너편 주상복합시설 1층으로 이전한 것이다. 슈퍼, 음식점, 커피 전문점 등을 한 곳에 모은 ‘푸드홀(foodhall)’ 형태의 시장엔 지역에서 활동하는 37개 점포가 입점했다.

1907년부터 롱고 가문이 3대째 뉴욕에서 커피 전문점을 운영하는 ‘포토리코(Porto Rico)’도 이곳으로 옮겨왔다. 가게 직원은 “시설이 훨씬 깨끗하고 고객들도 늘어 좋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시가 운영하는 시설이어서 임대료도 시장 가격보다 저렴하다. 올여름엔 에식스 마켓 지하에 민간이 개발하는 대형 푸드홀도 들어선다. 에식스 마켓 개발에 참여한 L+M디벨로프먼트파트너스의 최고경영자(CEO)인 론 모엘리스는 이날 개점식에서 “정부, 민간 부문,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민관 파트너십을 통해 사려 깊은 개발을 한 완벽한 사례”라고 말했다.

뉴욕에서는 자영업자들의 높은 임대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대안으로 여러 상점이 한 건물에 들어서는 ‘푸드홀 모델’이 주목받고 있다. 10∼15년씩의 장기 임대 계약 대신 ‘최소 임대료+수익 공유’로 입주 상인들이 불황기에도 임대료 부담을 덜 수 있다. 마케팅이나 홍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최근에는 ‘지역성’을 강조하는 ‘로컬 푸드홀’과 3월 문을 연 허드슨야드 ‘리틀스페인’처럼 특정 국가 음식을 모티브로 푸드홀을 구성하는 ‘싱글퀴진 푸드홀’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위기감 고조

인건비 부담을 피하려는 일부 소상공인들은 로봇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사람 대신 기계가 커피를 뽑고, 컵케이크 주문을 받는 식이다. 최저임금 인상 등 경영 환경 변화가 시설 투자를 통해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시설 투자나 혁신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구멍가게’ 형태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이다.

5∼11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포한 ‘전국 소상공인 주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언문에서 “불필요하고 부담을 주는 규제를 없애는 등 친성장 정책과 역사적 법안을 통해 소상공인이 이익을 사업에 재투자하게 할 것”이라며 “소상공인들이 세계 경제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과 수단을 갖게 하도록 인프라와 사이버 보안에도 투자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젠 급격한 시장 변화로 어려움을 겪는 소상공인들이 새로운 시대 흐름에 올라탈 수 있도록 교육훈련, 투자를 지원하고 규제를 개혁하는 일이 전 세계적인 과제가 됐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아마존#무인 상점#푸드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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