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로 끝날 문제 아니다… 저임금 고통 키운 ‘주52시간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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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제 파업 논란 들여다보니

전국 버스노조의 총파업 갈등을 계기로 저임금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악화시키고 노사갈등을 촉발하는 주 52시간제의 역효과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국 특유의 비정상적인 임금체계가 주 52시간제의 역설을 만들어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버스운전사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7월부터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월급이 많이 줄어드니 임금을 보전해 달라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수도권의 한 버스운전사 월급명세서를 분석한 결과 현재 276만 원인 월급이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224만 원으로 52만 원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하루 17시간씩 격일로 일하는 버스운전사의 임금은 기본급(86만 원)이 적고, 초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190만 원)이 많은 구조다. 주 52시간제가 시행되면 초과근로시간이 줄면서 월급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원래 노선버스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시간 특례업종’이었다. 버스는 서민의 ‘발’인 만큼 운전사들이 근로시간 규제를 받지 않고 무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열어둔 것이다. 그러나 2017년 과로에 시달린 버스운전사들의 교통사고가 잇달아 발생하자 국회는 지난해 2월 주 52시간제 도입안을 처리하면서 노선버스를 특례업종에서 제외했다. 버스운전사도 주 52시간제 적용을 받도록 한 것이다. 다만 시행 시기는 올해 7월로 유예했다.

문제는 버스업계가 준비할 ‘시간’은 있었지만 대처할 ‘역량’은 없었다는 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보조금에 의존하는 대다수 버스업계는 근로자의 임금 감소를 보전할 여력이 없는 상태다. 정부가 근로자 임금 감소분과 신규 채용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했지만, 기존 근로자의 불만을 달래고 업체의 재정난을 타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정부는 근로자들도 주 52시간제를 위해 어느 정도 양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휴식을 보장받는 대신 임금 감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하지만 이는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임금이 높은 대기업과 공공부문 근로자들은 약간의 임금 감소를 받아들이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택할 수 있다.

반면 버스운전사 같은 저임금 근로자들에게 임금 감소는 생계 위협이 될 수 있다. 결국 주 52시간제가 근로자 간 ‘임금 및 휴식 격차’를 더 벌리는 역설적 현상을 불러온 셈이다. 버스노조의 파업 움직임은 이런 역설을 수면으로 올렸다.

기본급은 적고 수당은 많은, ‘배보다 배꼽이 큰’ 기형적 임금체계는 버스업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현대자동차 같은 국내 최대 기업도 생산직의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어서 각종 수당으로 임금을 보전하고 있다. 이는 임금을 어떡하든 높여야 하는 노조와 기본급 인상을 최소화하려는 사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주 52시간제가 현재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내년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되면 노동시장 전체가 대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소기업일수록 ‘노사 담합’에 따른 기형적 임금구조를 갖고 있어서다. 버스노조처럼 임금 감소에 따른 ‘생존 파업’이 산업계 전체로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선진국처럼 연봉제를 도입하거나 기본급 위주로 임금체계를 단순화해야 주 52시간제의 역설을 해소할 수 있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현재 임금체계로는 버스뿐 아니라 다른 업종도 주 52시간제에 따른 임금 감소가 불가피하다”며 “(고정적인) 기본급을 확대하고 변동이 많은 수당을 줄이는 한편 근로자도 최소한의 임금 감소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버스노조#총파업#주52시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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