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놀고 떠들라…조선시대 천재가 지은 학교 ‘병산서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4일 16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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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11> 병산서원

건축가들에게 “우리나라 최고 전통 건축은?” 하고 묻는다면 석굴암을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부석사를, 혹은 종묘를 드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최고 서원 건축은?” 하고 묻는다면 이구동성으로 병산서원을 꼽을 것이다. 그만큼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최고 서원 건축이고, 건축가들이 전통 건축하면 떠올리는 원점과 같은 존재다. 병산서원에서 단연 돋보이는 요소는 주변 자연 환경의 차용과 대지 경사의 활용이다.

병산서원은 안동 하회마을에서 동쪽으로 가면 나온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병산이, 남쪽으로 서원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흔히 보이는 누마루(만대루)가 나오고, 누하진입(누각 아래를 통해 진입)으로 계단을 몇 단 올라가면 서원 중심마당이 나온다. 중심마당 좌우로는 유학생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마당 위로는 강학공간인 입교당이 있다.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으면 병산서원의 명성이 어디에서 기원하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한국 건축의 한 정상과 대면한다.

병산서원의 건축가는 서애 류성룡이다. 건축가가 땅의 경사를 얼마나 섬세하게 신경을 쓰며 단차를 주었는지, 긴 만대루 너머로 주변 자연 환경이 수직적인 위계를 가지며 눈에 들어온다. 만대루의 긴 지붕 위로 병산이 들어오고, 지붕과 마루 사이에는 낙동강이 들어오고, 마루 아래로는 대문 너머의 길이 들어온다. 건물 배치에서도 미묘한 신경을 썼다. 동재와 서재는 흔히 평행인데 이곳에서는 그렇지 않다. 동재와 서재를 만대루 쪽으로 살짝 벌렸다. 병산이 실제보다 좌우로 시원하게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대루를 동재와 서재 사이의 틈 사이에 맞춰 짓지 않고, 틈 너머로 길게 지은 점도 수평적 확장을 부추긴다.

만대루 긴 지붕이 두 별채 너머로 뻗어 나가 양 끝단 처마 모서리가 별채들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그로인해 만대루가 실제 길이보다 더 길어 보이고, 만대루를 통해 들어오는 병산도 실제보다 더 넓어 보인다. 여기서 만대루라는 건축 장치는 일종의 링크 포인트로 자연과 사람의 만남을 확장하고 팽창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입교당 대청마루에 앉아 만대루를 쳐다보면 왜 건축가들이 한국 전통건축을 “자연과 하나다”, “차경(借景·경치를 빌리다)이 뛰어나다”, “겹침이 뛰어나다” 하는지 알 수 있다.

병산서원이 과거 건축에 대한 향수로만 머물 수는 없다. 병산서원은 현대 학교 건축에 새로운 정체성을 불어넣어 줄 것이라 본다. 그중에서도 만대루에 지혜가 응축돼 있다. 한국의 캠퍼스들에게 이미 지어진 교정은 어떻게 고쳐져야 할지, 앞으로 지을 교정은 어떻게 지어야 할지를 일깨워준다. 요새 한국의 부모와 교사들은 아이들이 노는 꼴을 못 본다. 학교에서 쓰임새가 불분명한 공간은 공부방으로 만들거나 최첨단 장비를 넣어 실험실로 만든다. 빈 공간, 열린 공간을 보는 순간 ‘노는 공간’으로 규정하고 벽을 세워 방을 만든다. 도통 비울 줄 모른다.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학교는 스트레스를 차곡차곡 쌓아주는 곳이 아니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곳이다. 방들로 꽉 찬 공간에서 숨 막히게 공부만 할 것이 아니라 만대루가 있는 트인 학교에서 학생들이 쉴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입교당이 강학공간이면, 만대루는 유식(遊息·편히 쉼)공간이다. 병산서원에서 만대루를 입교당보다 더 크게 지은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만대루는 특별한 기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마치고 쉬면서 편하게 얘기를 나누는 장소다. 창의적인 생각과 기발한 아이디어는 만대루처럼 수려한 경관을 바라보며 편하게 이야기 하는 중에 나온다. 오늘날 학교에 필요한 것은 만대루의 비움과 여유다.

만대루가 전하는 3가지 메시지에 귀 기울이자. 첫째, 자연과 하나 된, 더 나아가 자연을 살리는 학교를 짓자. 둘째, 푸른 산 옆에 학교를 짓고 이를 마주하여 유식공간을 지어주자. 셋째, 채우고 쌓는 학교가 아니라 비우고 더는 학교를 짓자. 이를 귀담아 듣는다면 우리는 입교당 중심의 교정 시대에서 벗어나, 만대루 중심의 교정 시대로 들어 설 수 있을 것이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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