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기 기자의 청와대 풍향계]대통령의 경제 인식과 4無 회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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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일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앞줄 왼쪽부터),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대통령 오른쪽) 등 경제원로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이날 경제원로들은 소득주도성장 등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지만 문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특집대담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고용시장 안에 들어온 분들의 급여가 좋아졌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강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일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 전윤철 전 감사원장(앞줄 왼쪽부터),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대통령 오른쪽) 등 경제원로들과 간담회를 마친 뒤 청와대를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이날 경제원로들은 소득주도성장 등에 대해 쓴소리를 쏟아냈지만 문 대통령은 9일 취임 2주년 특집대담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고용시장 안에 들어온 분들의 급여가 좋아졌다’며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를 강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병기 기자
문병기 기자
지난달 24일 청와대 현안점검회의는 오랜만에 활력이 넘쳤다. 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이 크게 올라 임금 격차가 줄었다는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가 보고 안건으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은 회의 막바지 “이런 좋은 경제지표가 부각이 안 된다. 더 널리 알려야 한다”고 지시했다.

하루 뒤 열린 현안점검회의. 이날도 경제지표가 안건으로 올랐다. 그런데 이날 보고된 지표는 한국은행의 1분기(1∼3월) 경제성장률. 전 분기 대비 ―0.3%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8년 이후 11년 만의 역(逆)성장이었다.

대책 마련에 분주해야 할 법하지만 이날 회의는 정반대로 흘렀다. 누구도 좀처럼 입을 떼지 않아 곧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한 참석자는 “좋은 얘기도 아닌데…”라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는 이날 브리핑에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에 대한 입장을 묻자 “한국은행 자료를 참조하라”며 입을 닫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경제지표가 나쁘면 내놨던 “엄중히 주시하고 있다”는 수준의 의례적인 입장도 없었다.

경제지표에 대한 청와대의 태도를 이해하는 실마리는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2주년 특별대담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문 대통령은 이날 최저임금 인상 논란에 대한 질문에 근로실태조사 결과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 점만은 꼭 말씀드리고 싶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적어도 고용시장 안에 들어온 분들, 고용된 사람들의 급여는 굉장히 좋아졌다”고 했다. 반면 뒷걸음질친 경제성장률에 대해선 “작년 (동기에) 비하면 1.8% 성장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2분기에는 개선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줄어든 임금격차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효과지만,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은 일시적인 통계의 착시라는 얘기다.

좋은 결과를 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지금 청와대의 경우는 좀 심하다. 종종 집착에 가깝다. 경제 전문가들과 일부 언론이 문재인 정부에 ‘경제 실패 프레임’을 덧씌우고 있다는 청와대의 인식이 짙게 깔려 있다고 기자는 본다. 청와대 스스로 정책성과를 찾아내고 알려야 소득주도성장을 지켜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 경제정책에 유독 엄격한 잣대가 적용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자영업자 피해를 우려한 경제 부처들의 공개적인 이견을 묵살하고 무리하게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밀어붙인 데서 나타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자들과 청년들의 아우성에 진솔한 사과와 대책 마련 대신 “하반기면 나아진다”, “내년이면 좋아진다”는 매번 틀린 설익은 전망으로 불신을 키운 것은 정부 자신이다.

더 큰 문제는 좋은 경제지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 객관적인 경제인식을 마비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3일 경제원로 간담회에 참석했던 한 원로의 진단도 비슷했다. 그는“참석자들이 숱한 비판과 제언을 쏟아내는 데도 청와대 측 인사 중 누구도 이런 지적에 반응하거나 말하지 않아 놀랐다. 마치 장벽을 쌓아놓은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받아쓰기, 계급, 정해진 결론이 없는 ‘3무(無) 회의’를 지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에게 이견을 얘기하는 것은 의무”라고도 했다. 하지만 나쁜 경제지표에 침묵하고 좋은 경제지표는 오로지 소득주도성장의 성과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누가 문 대통령에게 다른 생각을 말할 수 있겠나. 가뜩이나 요즘 청와대에선 회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상향식 보고가 늘면서 토론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문 대통령이 말한 3무(無)에 더해 ‘4무(無) 회의’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대로 가다간 문 대통령의 경제 인식은 갈수록 현실과 멀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청와대#현안점검회의#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경제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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