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은 인간을 그리는 예술… 반세기 외길 해야 할 일 한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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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 창단 50주년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준비 중인… 임영웅 연출가-임수진 극장장 父女

임영웅 연출(왼쪽)과 딸 임수진 극장장이 카메라 앞에서 “오랜만에 팔짱도 껴보고 다정한 포즈를 취해 본다”며 웃었다. 임 극장장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오지명 윤소정 김무생 사미자 손숙 배우가 집과 극장으로 놀러 왔다”며 “50년이 지나 지금 그분들이 모두 우리 연극계의 역사가 된 걸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임영웅 연출(왼쪽)과 딸 임수진 극장장이 카메라 앞에서 “오랜만에 팔짱도 껴보고 다정한 포즈를 취해 본다”며 웃었다. 임 극장장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오지명 윤소정 김무생 사미자 손숙 배우가 집과 극장으로 놀러 왔다”며 “50년이 지나 지금 그분들이 모두 우리 연극계의 역사가 된 걸 보면 감회가 남다르다”고 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1969년 국내 초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프로그램북은 50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예언서’였다. 프로그램북에서 임영웅 연출은 자신을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처럼 베케트의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 적었다. 원로 연극인 김정옥은 “(이 작품이) 미래의 고전이 될 것”이라고 썼다. 50년이 지난 오늘 임영웅이 작품을 통해 연극계에 전했던 말들은 한국 연극의 역사가 됐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살아있는 고전이 됐다.

다음 달 극단 산울림 50주년 공연과 ‘연출가 임영웅 50년 기록’ 전시를 준비 중인 임영웅 연출(83)과 그의 딸 임수진(56·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 극장장)을 26일 만났다. 임 연출은 부축을 받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했다. 그러나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이내 여유롭게 포즈를 취했다. 웨딩사진 같은 다정한 포즈 요청에는 “딸이랑 나랑 나이 차가 몇인데”라며 농담도 건넸다.
50주년을 앞둔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고 보는 거지 뭐”라고 답했다. 딸 수진 씨는 “초연 당시 제가 6, 7세여서 극장에 놀러가 마냥 재밌어한 기억이 있는데 벌써 50년 전”이라며 웃었다.

산울림소극장이 공연 티켓 위에 손수 찍어주던 도장(스탬프) 모음. 마포문화재단 제공
산울림소극장이 공연 티켓 위에 손수 찍어주던 도장(스탬프) 모음. 마포문화재단 제공
1969년 임 연출은 극단 산울림을 설립하며 “우리말 연극을 하니 순우리말로 하되, 사회에 여운과 울림을 줬으면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방송사 PD와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창단 공연으로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택했다.

작품은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어느 시골길에서 부질없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다.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표현하며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에도 성공해 해외 초청 공연도 했다. ‘연극은 인간이 그리는 예술’이라는 그의 신념이 녹아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임 연출은 “연극은 항상 새롭기 때문에 직접 디렉팅을 했는데 올해는 몸이 불편해 쉽지 않다”며 “정동환, 안석환, 김명국 등 오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믿는다”고 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그는 여전히 활동 중인 현역 연극인이다. 떨리는 손으로 손수 명함을 건네며 “극단 산울림 대표”로 본인을 소개한 그는 오랜만에 찾은 무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봤다. “이건 무슨 소품이냐” “요즘 어떤 작품이 진행 중이냐”고 묻기도 했다. 딸 수진 씨는 “얼마 전까지도 아버지는 여러 공연을 챙겨 보실 정도로 평생 연극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임 연출이 극단에서 쌓아올린 시간은 극장장인 수진 씨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그는 ‘고전극장’ ‘편지콘서트’ 등 연극, 예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년째 이어왔다. 그는 “부모님 영향으로 늘 연극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미술이 좋아 해외로 떠났다. 근데 나중에야 연극인들의 ‘인큐베이터’ 같은 산울림의 가치를 깨닫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극장을 직접 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산울림소극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며 동생인 임수현 예술감독도 힘을 보태고 있다.

임 극장장은 “가족끼리 닮은 건 많지 않아도 하나를 오랜 시간 지속하는 습관만큼은 닮았다”고 했다. 임 연출이 많은 굴곡 속에서도 50년간 극단을 이끌어왔듯 임 극장장 역시 “신진 극단, 예술가와 함께하는 협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 명동예술극장. 5월9일~6월2일. 2만~5만 원.
전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展'. 서울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3. 5월7일~25일. 무료.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고도를 기다리며#극단 산울림#임영웅#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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