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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1904년 군율 선포… 불법지배 사실상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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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1904년 군율 선포… 불법지배 사실상 시작”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4-18 03:00수정 2019-04-1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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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메이조대 이나바 지하루 교수, 한국역사연구원 세미나서 발표
군율은 한국법 무시한 계엄령… 군사행동 정당화하고 토지 수용
이나바 지하루 일본 메이조대 교수는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16일 열린 세미나에서 “러일전쟁 당시 한국을 점령한 일본군은 실질적으로 군정을 시행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군사사(史)적 관점에서 일본의 실질적인 한국 지배는 러일전쟁 당시인 1904년 2월 9일 일본군의 서울 점령으로 이미 시작됐다.”

한국역사연구원(원장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은 일본 메이조(名城)대 이나바 지하루(稻葉千晴·62) 교수를 초청해 16일 근대사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군사사로 본 한국 병합’을 주제로 발표한 이나바 교수는 “일본군은 러일전쟁이 끝난 뒤에도 철수하지 않고 1945년 8월 패전까지 군사력을 통해 한국 지배를 떠받쳤다”고 말했다.

러일전쟁은 1904년 2월 8일 일본 함대가 뤼순(旅順) 군항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됐고, 일본군은 인천으로 상륙해 서울을 점령한 뒤 10만 명가량의 병력을 한반도를 통해 만주로 이동시켰다.

일본군은 군대를 진주시킨 만주에서는 바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정서를 설치했지만 한국에서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그러지 않았다. 이나바 교수는 “그러나 일본군이 1904년 7월 3일 발포한 ‘군율’은 이름만 다를 뿐 사실상 계엄령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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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이 발포한 ‘군율’에 따르면 한국주차군 사령관이 일본의 군사행동과 행정을 방해하거나 방해할 우려가 있는 한국인은 한국 법을 무시하고 극형에 처할 수 있었다. 일본군은 2970만 m²(약 900만 평)에 이르는 토지를 강제로 수용하기도 했다.

이나바 교수는 “일본 외무성 사료관에 한일의정서(1904년 2월 23일 일제의 강박 아래 공수동맹·攻守同盟을 전제로 체결된 조약) 교섭 파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며 “이는 외무성이 원래부터 한국 외교당국과 교섭할 생각이 없었고, 한일의정서 체결은 군사력을 배경으로 한 일본의 독단 행위였다는 걸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서영희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불법적 침략을 강조하려는 이나바 교수의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 관점에 따르면 1904년부터 1910년 강제병합 전까지 대한제국의 주권을 무시하는 결론에 이를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태진 교수는 “그럼에도 이번 발표는 일본이 전쟁과 동시에 한국을 군사적으로 강점했고, 한일의정서는 저지른 일을 감당하려고 그 뒤에 강요한 것에 불과하다는 걸 드러낸다. 한국주차군이 발포한 ‘군율’은 주차군 군령과 통감부 법령으로 바뀌며 한일강제병합까지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최덕규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대한제국은 개전을 앞두고 중립 선언을 열강에 타전했고, 일본의 한국 점령은 20세기 전쟁사에서 교전국이 중립국을 침략한 최초의 사례였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러일전쟁#계엄령#한국역사연구원#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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