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美에 퇴짜 맞고 南에 ‘오지랖’ 막말한 김정은의 억지와 허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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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간 중재·촉진자 역할을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표류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 대통령을 만나 “대북제재는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선을 긋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12일 시정연설에서 “제재 완화를 더 부탁하지 않겠다”고 맞받아쳤다. 북-미가 정면 의견대립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중재 외교는 너트크래커(nut cracker) 속의 호두 신세가 됐다.

김정은은 시정연설에서 “남조선 당국은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가 아니라 민족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을 향해 대북제재 한미 공조를 깨고 북한 편을 들라는 노골적인 협박성 발언이다. 선전매체나 당국자들이 내뱉을 법한 거친 표현을 북한 최고지도자가 직접 쓴 것은 김정은의 초조함이 그만큼 심각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미국 조야(朝野)에선 한국 정부가 한미동맹 대신 북한 편을 든다는 의구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우리 외교의 선택지는 더 좁아지게 됐다. 특히 김정은의 ‘오지랖’ 운운하는 태도에 대해선 단호하게 짚고 가야 한다.

김정은은 연말까지 대화 창구는 열어 두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훌륭하다”며 호응했다. 결국 북-미가 각자 입장은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의 끈은 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북-미가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이 전혀 다른 상태에서 설령 대화가 일부 복원된다 해도 의미 있는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는 대북특사를 통해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 보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토대로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진행에 대한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회담 피로증’만 생기고 톱다운 방식의 효용성이 점점 약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무조건 대화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져선 안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바탕으로 비핵화를 압박하면서 한편으로는 남북 간 실무 접촉을 통해 회담의 의제와 접점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설익은 상태에서 정상 간 톱다운 담판에 넘겨 버리는 어설픈 회담 방식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김정은#문재인 정부#대북정책#비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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