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관 도피 7년만에 끌려나온 어산지… 美로 송환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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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 美기밀 수십만건 폭로뒤 도피생활
에콰도르 정부 ‘망명자 신분’ 철회, 모레노 대통령 취임후 갈등 이어져
美 송환되기까진 시간 걸릴듯

체포되면서도 승리의 ‘V’ 11일 영국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된 줄리언 어산지가 웨스트민스터 치안 
법원에 도착하는 순간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으로 V 표시를 하고 있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어산지는 법정에서도 취재진을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고 판사가 변호사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때에도 침착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런던=AP 뉴시스
체포되면서도 승리의 ‘V’ 11일 영국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된 줄리언 어산지가 웨스트민스터 치안 법원에 도착하는 순간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으로 V 표시를 하고 있다.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른 어산지는 법정에서도 취재진을 향해 엄지를 추켜올렸고 판사가 변호사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을 때에도 침착하면서도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런던=AP 뉴시스
폭로 웹사이트 위키리크스 설립자인 줄리언 어산지(47)가 11일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체포됐다. BBC 등 외신에 따르면 영국 경찰은 이날 “에콰도르 정부가 어산지의 망명자 신분을 철회한 뒤 대사관이 영국 경찰 진입을 허가해 신병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체포 혐의는 보석(保釋) 관련 법 위반과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라고 전했다. 공개된 체포 영상에는 어산지가 경찰 7명에게 사지를 붙들린 채 대사관 입구로 끌려나오는 모습이 담겼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어산지가 망명 관련 국제 규정을 계속해서 위반했기 때문에 외교적인 보호조치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다만 고문이나 사형을 당할 수 있는 국가로 송환하지 말라고 요청했으며, 영국 정부가 이를 서면으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사지드 자비드 영국 내무장관은 “어산지가 영국 사법당국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산지는 2012년부터 망명자 신분으로 영국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머물렀다. 그는 2010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 미국 기밀 수십만 건을 폭로하면서 1급 수배 대상에 올랐다. 도피 중 성폭행 의혹으로 스웨덴 당국에 쫓기다가 같은 해 런던에서 체포됐다. 이후 미국에 송환되면 중한 처벌을 받을 게 확실해지자 에콰도르에 망명 신청을 했다.

그러나 모레노 대통령이 부임한 2017년부터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모레노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한 직후 어산지는 트위터에 “에콰도르 국민은 위키리크스가 에콰도르 부패의 증거를 찾아서 폭로해도 자부심을 느낄 것”이라고 썼다. 모레노 대통령은 “(어산지가) 에콰도르 정치에 개입해선 안 된다”며 날을 세웠다.

결국 모레노 대통령을 겨냥한 글이 결정타가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모레노 대통령은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위키리크스가 자신과 가족들의 사적 정보를 SNS에 유포했다며 “어산지는 개인 계좌나 전화를 해킹할 권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어산지가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반복해서 망명 조건을 위반해 왔다”고 말하기도 했다. 같은 날 에콰도르는 어산지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일했다는 이유로 대사관 직원을 해고했다.

관건은 미국 송환 여부다. 워싱턴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미 검찰은 이날 어산지를 정부 기밀 컴퓨터 해킹 공모 혐의로 지난해 3월 이미 기소했다고 밝혔다. 영국에서 그의 신병이 확보됨에 따라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어산지가 미국 송환을 거부하고 소송을 진행할 것으로 전망돼 인도가 될 것인지, 된다면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불분명한 상태다. 어산지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들의 변호인도 스웨덴 검찰에 사건 재개를 요청하겠다고 밝혀 나라별로 복잡한 법정 다툼이 예상된다.

위키리크스 측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CIA를 포함한 강경 세력들이 그를 감옥에 가두려 한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 국가안보국의 도청 의혹을 폭로해 러시아에 망명 중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자신의 트위터에 “에콰도르가 어산지를 대사관 건물에서 끌어내기 위해 영국 경찰을 부른 것은 역사 교과서에 실릴 일”이라고 비판했다.

최지선 aurinko@donga.com·이윤태 기자
#폭로사이트#위키리크스#어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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