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듯한 환상세계… 할리우드 사랑 한몸에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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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展

제임스 진의 ‘Aviary―Red Fire’(2019년). 물고기를 잡기 위해 훈련한 새를 이용하는 중국 어부들이 새의 사진을 찍어 판매하는 것을 보고 만든 작품으로, 전통이 변질된 형태로 소비되는 모습을 의미한다. 롯데뮤지엄 제공
제임스 진의 ‘Aviary―Red Fire’(2019년). 물고기를 잡기 위해 훈련한 새를 이용하는 중국 어부들이 새의 사진을 찍어 판매하는 것을 보고 만든 작품으로, 전통이 변질된 형태로 소비되는 모습을 의미한다. 롯데뮤지엄 제공
“잡지에 일러스트를 그리겠다며 가져간 포트폴리오에는 순수예술에 가까운 그림이 가득했어요. 디자인이라고 하기엔 초현실적인, 너무 어둡고 불편한 것들이었죠. 수차례 거절당한 뒤 마지막으로 찾아간 DC코믹스에서 독특하고 다양한 면을 좋게 봐줬습니다.”

미국 아카데미상을 받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과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마더!’, 드니 빌뇌브의 ‘블레이드 러너 2049’. 2017년 개봉한 세 영화는 모두 작품 포스터를 한 사람이 그렸다. 바로 대만계 미국인 일러스트 작가인 제임스 진(40·사진)이다.

진은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를 졸업하고 DC코믹스 버티고에서 출간했던 만화 ‘페이블스’ 표지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2008년부터는 프라다와 협업해 특유의 몽환적, 상징적 이미지를 뽐내기도 했다. 그의 첫 국내 전시 ‘제임스 진, 끝없는 여정’이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3일 전시장에서 만난 진은 ‘셰이프 오브 워터’ 작업 당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너를 위한 완벽한 프로젝트가 있다”고 해 폭스 스튜디오에서 만났다고 했다.

“기예르모의 제작사 이미지를 그린 적이 있어요. 사무실에 갔더니 그가 ‘폭스’ 로고가 새겨진 메모지에 음양의 두 캐릭터가 겹쳐진 스케치를 그려주더군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오리지널 포스터(2017년). 롯데뮤지엄 제공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오리지널 포스터(2017년). 롯데뮤지엄 제공
진은 수천 장의 촬영장 사진과 참고 이미지를 보고, 푸른 바닷속 헤엄치는 이미지를 그려냈다. 영화 주인공이 목탄으로 몬스터를 그리는 것에서 착안해 목탄 드로잉으로 포스터를 그렸다. 한 해에 세 작품의 포스터를 그리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고.

“세 감독에게 같은 달 제안을 받았어요. 나중에 대런에게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될 거라고 안심시키느라 혼났죠. 저도 잇따른 제안에 삶이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환상적, 상징적 이미지에 대한 욕망이 당시 할리우드의 ‘집단 무의식’에 들어 있었는지도 모르죠.”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그린 포스터와 ‘페이블스’의 커버, 드로잉, 대형 회화와 조각을 만날 수 있다. 최근 작업은 비교적 밝은 색채가 두드러진다. 진은 “아이를 갖고 아버지가 되는 경험이 변화를 일으켰다”고 했다. 그가 학생일 때만 해도 그림이 너무 어둡고 복잡해 일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단다.

다른 잡지의 커버는 ‘표준’적이었지만 자신의 그림은 그렇지 않아 불안할 때도 있었다. 그림 자체는 자신이 있었지만 ‘표지에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독창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표지 작업은 ‘만화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상 6년 연속 수상, 하비 어워즈 ‘최고 커버 작가’ 4회 수상의 결실을 가져다줬다.

진은 “세 살 때 대만에서 이주해 너무나 미국적인 환경에서 자라면서 ‘트라우마’에 가까운 적응기를 겪었다”며 “어쩌면 그 때문에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그림에 더 매달렸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림은 나를 다른 곳에 안착하게 해주는 낙하산”이라며 “그래서 내 그림이 섬세하고 예민한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근에는 이탈리아 선교사 출신으로 중국 청나라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한 주세페 카스틸리오네(1688∼1766)에게 관심이 많다. 카스틸리오네는 서양 회화 기법을 동양화에 접목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번 전시도 우주 삼라만상의 질서를 담는 ‘오방색’을 주제로 했다. 9월 1일까지. 9000∼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셰이프 오브 워터#제임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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