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개화, 관측목에 피어야 인정… 계절의 미묘한 변화 AI는 모르죠”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사계절의 변화 관찰-기록하는 김인식 서울기상관측소장

김인식 서울기상관측소장이 8일 서울 종로구 관측소 앞에 있는 관측목 벚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김 소장은 매일같이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등의 상태를 살핀다. 그가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해야
 서울의 공식 개화 날짜가 확정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김인식 서울기상관측소장이 8일 서울 종로구 관측소 앞에 있는 관측목 벚나무를 살펴보고 있다. 날이 따뜻해지고 꽃망울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김 소장은 매일같이 매화, 개나리, 진달래, 벚나무 등의 상태를 살핀다. 그가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해야 서울의 공식 개화 날짜가 확정된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올해 서울에서 벚꽃이 핀 날짜는 이달 3일이다. 혹자는 그 전에 집 근처에서, 혹은 공원에서 활짝 핀 벚꽃을 봤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공식적으로 서울에서 벚꽃이 핀 날짜는 바뀌지 않는다. 서울의 벚꽃 개화 날짜는 서울기상관측소에서 지정한 관측목(觀測木)인 벚나무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이 폈을 때 확정하기 때문이다.

김인식 서울기상관측소장은 “날이 따뜻해지면 반나절 만에 꽃이 확 필 수 있어 잠시도 방심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지난달부터 매일같이 서울 종로구 기상관측소 앞을 살폈다. 관측소 앞은 흡사 ‘작은 식물원’을 연상케 한다. 단풍나무, 은행나무, 벚나무, 복숭아나무, 개나리, 진달래 등이 세 그루씩 심어져 있다. 이 나무들을 살펴 △꽃눈이 올라온 날(발아) △꽃이 피기 시작한 날(개화) △대부분의 꽃이 핀 날(만발)을 기록한다. 올해 서울에서 매화는 지난달 8일, 진달래와 개나리는 지난달 21일 개화했다.

○ ‘이 사람’이 눈으로 확인해야 공식 기록

사계절의 변화를 직접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을 ‘계절 관측’이라고 한다. 첫눈과 첫 얼음, 한강의 첫 결빙, 식물 10종, 동물과 곤충 6종이 김 소장의 관찰 대상이다. 기상청은 1904년 인천과 전남 목포, 부산에서 서리와 얼음, 눈을 관측해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강과 하천의 결빙, 각종 동식물의 계절별 변화를 살피고 있다. 현재 서울뿐 아니라 서해 최북단 섬인 인천 백령도와 강원 강릉, 대전, 경북 안동과 포항, 울릉도, 전북 전주, 제주 등 22개 지점에서 계절 관측을 진행하고 있다.

계절 관측은 일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대상을 두고 시행한다.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김 소장은 매년 겨울이 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어김없이 한강대교 노량진 방향 2∼4번째 교각을 예의 주시한다. 그의 눈에 얼음이 보이면 공식적으로 한강 결빙이 시작된 것이다. 다른 곳에서 한강이 얼었다 해도 소용없다. 한강 결빙은 1907년부터 이곳에서 관찰해 기록했기 때문이다.

계절 관측은 인위적으로 변화를 주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관찰해야 한다. 관측목은 따로 영양제를 주거나 가지치기 등을 하지 않는다. 곤충이나 동물들은 관측소에서 직접 기를 수 없어 관측소 주변을 관찰해 기록한다. 제비와 매미, 나비, 잠자리 등이 그렇다.

다만 대도시에선 따로 관측하지 않는 항목들이 있다. “개구리 소리가 어느 순간부터 들리지 않더라고요.” 김 소장의 말처럼 개구리는 1990년대 초반부터, 뱀은 2015년부터 서울과 광역시에선 관측하지 않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서 관찰할 수 있는 곤충은 나비와 잠자리, 매미 등이다. 이렇듯 계절 관측은 도시화와 같은 지역 변화를 감안해 진행한다.

○ 여의도 벚꽃 개화, 이 나무에 달렸다


관측자들은 봄과 가을이면 시민들이 꽃과 단풍을 보기 위해 많이 몰리는 곳을 집중 관찰한다. 봄에는 벚꽃이나 철쭉이 많이 피는 군락지를 관측해 꽃이 피었는지, 만발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가을에는 전국 유명 산들의 단풍을 관측해 첫 단풍이 언제 시작됐는지, 절정은 언제였는지 기록한다. 이들이 관측하는 벚꽃 군락지는 서울 여의도 윤중로와 대전 계룡산, 진해 여좌천 등 13곳이다. 철쭉 군락지는 소백산과 지리산, 한라산 등 3곳이다. 단풍 관측지는 서울 북한산과 강원 설악산, 제주 한라산 등 21곳에 이른다.

“윤중로에 갔는데, 꽃이 핀 나무들이 좀 있더라고요. 그래도 관측목에서 꽃이 피어야 공식 개화로 인정할 수 있어 꽤 기다렸죠.” 김 소장은 지난달 말부터 수시로 윤중로를 찾았다. 윤중로에 심은 벚나무 중 국회 동문 앞에 있는 세 그루가 기상청 관측목이다. 3일 서울기상관측소 앞의 벚나무 개화를 확인한 김 소장은 4일 윤중로로 달려갔다. 거기서 관측목 윗부분 가지에서 세 송이 이상 꽃이 핀 걸 확인했다. 윤중로의 벚꽃 개화일이 서울 공식 개화일보다 하루 늦은 4일로 확정된 순간이다.

전국 지점에서 측정한 벚꽃과 철쭉의 개화와 단풍 등의 관측 자료는 기상청 홈페이지에 공개돼 있다. 누구나 나들이 계획을 세울 때 참고할 수 있다. 이 자료들을 살펴보면 기후 변화를 실감할 수 있다. 기상청은 “1973년 이후 관측 자료를 종합해 보면 서울의 봄꽃 개화 시기가 전반적으로 빨라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올해는 평년보다 따뜻한 날들이 이어지면서 평년보다 매화는 28일, 벚꽃은 7일 빨리 폈다. 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1912년부터 2018년까지 한반도의 연평균 기온은 12.6도에서 14.0도로 1.4도 높아졌다.

김 소장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작은 변화라도 놓칠세라 매일 긴장해야 하지만 일에 대한 자부심만은 대단했다. “기온이나 습도, 풍향 등은 기계가 측정할 수 있지만 계절 관측은 온전히 사람의 몫이에요. 벚꽃이 만발했는지를 판단하고, 나비가 찾아온 걸 기계가 대신 관측할 수 있겠어요?”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김인식 서울기상관측소장#계절 관측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