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 가장 고귀한 음식 만든다”…NYT 극찬 백양사 정관스님 ‘봄나물 특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5일 14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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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에는 듯한 추위를 막아주는 게 음식이에요.”

4월이 맞나 싶게 찬 바람이 매섭게 불던 날이었기에 정관 스님(63)의 강연은 귀를 붙잡았다. 1일 서울 중구 충무로의 ‘샘표 우리맛공간’에서 열린 ‘우리맛 위크-봄나물 특강’에서 였다. 정관 스님이 강의와 요리 수업을 함께 진행하는 이 행사는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의 경쟁이 치열해 ‘당첨되면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것’이라는 블로그 후기가 올라올 정도다.

정관 스님은 넷플리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시즌3’에 출연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그의 출연분은 2017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컬리너리 시네마(Culinary Cinema) 부문에 초청됐고 에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2015년 뉴욕타임스는 ‘정관 스님, 철학적 요리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세계에서 가장 고귀한 음식을 만들고 있다”면서 찬사를 보냈다. 그의 손에서 빚어지는 사찰음식은 ‘신(新)한류’로 불릴 만하다. 정관 스님이 주지로 있는 전남 장성 백양사 천진암에는 주말마다 20~30명의 외국인이 찾아와 사찰음식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날 스님이 선보인 나물 요리는 빡빡장(강된장)을 올린 방풍나물죽과 두릅나물 무침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바구니엔 파릇한 나물이 가득했다. 풍을 예방한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방풍나물은 약재로도 많이 쓰이는 나물이고, 독특한 향을 가진 두릅은 없어졌던 입맛을 다시 돌게 한다는 나물이다.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면서 정관 스님은 “나물이라는 게 그야말로 우리나라 음식이더라”라면서 “익힐 것은 익히고 절일 것은 절이고 간장 된장으로 무칠 것은 무쳐야 한다. 그렇게 밸런스를 맞춰서 음식을 해야 몸에 약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해진 레시피가 따로 없다는 스님이다. 이날 강의에서 그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요리한다면 죽은 음식”이라면서 “생명체는 자라는 것이기 때문에 계속 변화한다. 매일 요리 방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강의가 끝난 뒤 만난 자리에서도 정관 스님은 “식재료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그에 맞춰 요리해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레시피가 없으면 매번 맛이 달라지지 않나.

“레시피가 있으면 틀에 박힌 고정된 음식을 만들어낸다. 식재료는 그렇게 고정된 대상이 아니다. 식물은 땅을 의지해 뿌리박고 잎을 돋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한 생명이 나고 죽기까지 한 생애가 담겨 있는 것이다. 저마다 고유의 삶의 무게가 있다. 두릅은 두릅대로, 방풍나물은 방풍나물대로. 요리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젊은 연구자들이 ‘천재 스님’이라고 부른다는데(정관 스님은 샘표식품이 진행해 온 ‘우리맛 연구 프로젝트’의 멘토로 참여하고 있다).

“하하. 요리를 할 때 ‘내 입맛에 맞으면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80% 이상 맞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과 요리를 공유하지 않겠나.”

지난 겨울 천진암을 찾은 우리맛연구 팀원들에게 스님이 소개한 제철 식재료는 ‘겨울무’였다. 무는 사철 중 겨울무가 제일 맛나단다. 스님은 그 겨울무의 윗부분, 중간, 아래가 저마다 맛이 다르고, 무를 직각으로 자를 때와 비스듬히 자를 때 각기 맛이 다르다면서 맞춤 요리법을 전했다. 이날 함께 참석한 최정윤 샘표 우리맛연구 팀장이 설명을 더했다. “스님은 조리법을 외워서 하시는 게 아니라 식재료 본연의 맛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요리하시기 때문에 젊은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다. 주재료와 어울리는 부재료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파격적이면서도 놀랄 만큼 잘 어울려서 다들 ‘천재스님’이라고 부른다.”

타고난 감각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시골 농부의 딸이었던 스님은 예닐곱 살 때부터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를 뒤져 재료를 꺼내서는 혼자 요리를 하면서 놀았다고 했다. 열일곱 살에 출가한 뒤에도 내내 자연의 먹을거리들을 찾고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좋았다고 했다. 이렇게 쌓인 시간을 통해, 익숙한 재료에서 생각지도 못한 맛을 찾아내는 스님의 미각이 다듬어졌다.

-오늘 강의 중에 ‘방풍나물을 갈면 생선 냄새가 난다’고 했다.

“식물의 맛과 향은 다 다르다. 재료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고. 냉이를 볶으면 해물 맛이 난다. 달래에 된장을 넣어 볶으면 견과류 맛이 나더라. 가죽나물을 볶으면 양고기 맛이 나고. 어성초를 소금으로 발효시키면 젓갈 대용으로 쓸 수 있다.”

스님이 풀어놓는 맛의 향연뿐 아니다. 우리맛연구팀이 발표한 봄나물 연구결과 중 하나는 ‘은달래 버터’다. 달래는 쪽파의 매콤함, 수삼의 쌉싸름한 향미가 함께 느껴지는 봄나물이다. 이 은달래에 된장을 넣어 버무리고 옥수수유와 생크림을 넣어 볶은 것을 갈아서 졸인 게 은달래 버터로, 땅콩버터 같은 고소한 풍미가 난다. “은달래에서 버터 맛을 끌어낸 것도 정관 스님의 천재성”이라고 최 팀장이 귀띔했다.

-음식의 역할은 무엇인가.

“땅에 의지하는 모든 생명은 에너지가 없으면 도태된다. 에너지는 몸을 움직이는 것뿐 아니라 정신의 동력이기도 하다. 에너지가 지나치게 많을 필요는 없다. 사찰음식은 필요한 만큼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사찰음식엔 정신과 육체를 연결해주는 에너지가 담겨 있고,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경험이 들어 있다.”

-사찰음식을 접하는 일반인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 수 있나.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 대한 난제가 있지 않나. 나 자신이 누구인지 계속해서 자문하게 되는 것 말이다. 나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 비우는 일도 필요하겠지만 채우는 것도 필요하다. 음식을 먹는 일, 그로 인해 기운을 갖는 일은 자신을 알기 위한 도구 중 하나다.”

-먹는 일이 어떻게 자신을 아는 도구가 될 수 있는가.

“식재료에 대해 생각해 보라. 먹고 나면 그만인 게 아니다. 식재료는 죽음으로써 그것을 먹는 대상을 살린다. 음식에는 그 과정이 들어 있다. 더욱이 사찰음식은 마음을 일깨워주는 도구다. 마음이 열리기 위해선 많은 영양가, 많은 양념이 필요한 게 아니다. 단순한 먹을거리로 채워야 한다.”

뉴욕타임스 기자 제프 고디너는 “마늘도 고기도 쓰지 않는 사찰음식의 맛의 비밀은 시간”이라고 했다. 그는 간장, 된장, 김치 같은 발효식품을 예로 들었다. 오랜 시간이 담긴 한국의 음식에 세계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세계가 사찰음식에 열광하는 이유를 묻자 정관 스님도 “오래 갈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시간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때 음식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미식으로만 치달았었다. 호화로운 요리가 부의 상징이었던 때가 있었다. 이제는 그런 시대가 아니다. 음식은 나의 성품과 인격을 만들어주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며 몸을 치유해준다. 음식은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한식과 사찰음식에는 그런 정신성이 있다. 그래서 요리를 할 때 정해진 틀을 따르지 않는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갖고 음식을 하는지, 나와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요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스님은 “식재료에 간장과 된장이 들어간다는 건 그 음식이 자연에서 비롯됐고 자연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 그 음식에 오랜 시간이 들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나는 간장을 생명수라고 부른다. 요즘 사람들이 나트륨 걱정 많이 하는데 간장이 소금보다 염도를 낮추면서 짠 맛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아나?”

-우리맛이라는 건 뭔가.

“태어나기 전부터 나에게 숙지된 맛이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도‘우리맛’이라는 걸 모른다. 인스턴트가 가미되지 않은 본연의 맛, 그 우리맛을 찾아가야 한다. 그러려면 식재료를 완전히 파악해야 하고.”

-앞으로의 계획은.

“우리 사찰음식의 조리 방법은 다채롭다. 삶고, 무치고, 전을 부치고, 발효시킨다. 미얀마,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각국의 사찰을 찾아가 현지 식재료를 우리의 조리방법으로 만들고 그 방법을 알리고 싶다. 그게 나의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정관 스님의 봄나물 조리법

반찬가게에서 제일 잘 나가는 반찬이 나물이란다. 정관 스님의 ‘우리맛 위크-봄나물’ 특강에 함께 했던 이소영찬방 이소영 대표의 얘기다. 이 나물 요리는 은근히 까다롭다. 불에 너무 오래 가열하거나 너무 오래 매만져 요리하면 맛이 없다. 손쉽게, 단순하게 조리하는 게 나물을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특강에서 정관 스님이 알려준 봄나물 메뉴의 조리법을 소개한다. 이대로만 따르지 않아도 되고 그때그때 분위기와 요리사의 경험에 따라 조리법을 조금씩 달리 할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설명이다.

○봄 입맛 돋우는 빡빡장

재료 : 씀바귀 100g, 냉이 100g, 청양고추 5개, 들기름 약간, 된장 500g, 올리브유 약간
※조리 방법

① 냉이와 청양고추는 다진다. 씀바귀는 설탕물에 데쳐서 다진다. 물을 끓이다가 준비한 씀바귀와 냉이, 청양고추를 넣어 함께 끓인다. 이때 물의 양은 채소가 살짝 잠길 정도로 잡는다. 중간에 끓는 물을 넣어 농도를 조절한다.

② 채소가 80% 정도 익었을 때 된장을 넣고 끓인다.

③ 끓이다가 물이 자작하게 줄어들면 들기름과 올리브유를 넣어 한소끔 끓여 완성한다.

○향긋한 두릅 무침

재료 : 두릅 100g, 간장 한 큰 술, 된장 한 큰 술

※조리 방법

① 끓는 물에 두릅을 삶는다. 이때 두릅의 단단한 밑동 부분을 십자로 칼집을 넣고 엄지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말랑해질 때까지 삶아준다.

② 뜨거운 물에 삶아낸 두릅을 간장과 된장 두 가지 양념으로 버무린다.

○봄 바람 막는 방풍나물 죽

재료: 갯방풍나물 1㎏, 찹쌀 500g, 멥쌀 1㎏, 좁쌀 500g, 감자 7개, 천일염 한 스푼, 조선간장 한 스푼

※조리 방법

① 찹쌀, 멥쌀, 좁쌀은 함께 깨끗이 씻어 30분 간 불린다.

② 불린 찹쌀, 멥쌀 중 1/2은 믹서기에 갈고 나머지는 그대로 사용한다. 불린 찹쌀과 멥쌀의 반은 같은 양의 물과 섞어 믹서기에 갈아준다.

③ 방풍나물은 깨끗이 다듬어 씻어 3분의1만 물과 섞어 곱게 갈아 준비한다.

④ 남은 방풍 나물을 잎만 준비해 끓는 물에 데친다.

⑤ 불린 쌀 양의 2배의 물을 솥에 붓고 끓이다가 ①의 갈지 않은 불린 쌀을 넣고 한소끔 끓으면 중불로 해서 ②의 간 쌀, 좁쌀을 넣고 뭉근하게 죽을 쑨다. 죽의 농도는 뜨거운 물로 잡아 끓는점을 낮추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⑥ 감자는 눈을 중심으로 베어낸다는 느낌으로 과도로 뚝뚝 잘라 넣는다.

⑦ 죽 쌀이 3분의2 정도 퍼지면 ③의 갈은 방풍나물 물을 넣고 밑바닥을 주걱으로 살살 젓는다. 주걱을 냄비 바닥에 넣어 밥알이 눌어붙지 않고 으깨지지 않게 살살 저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⑧ 온전히 쌀이 익으면 먹기 전에 ④의 방풍나물을 넣고 골고루 저으면서 소금과 조선간장을 넣고 간을 맞추면서 죽을 끓이면 완성.

⑨ 죽을 그릇에 담고 빡빡장을 죽 위에 한 스푼 올려 마무리하고 두릅무침과 함께 낸다.

김지영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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