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비극 다시는 없게…” 軍警 첫 사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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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평화공원서 71주년 기념식
이낙연 총리 “평화의 섬 거듭 나” 추념사, 文대통령 페북에 “끝까지 챙길것”

3일 제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들이 헌화한 뒤 희생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4·3사건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도 희생된 데 대해 군과 경찰은 이날 처음으로 사과했다. 
제주=뉴시스
3일 제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에서 유족들이 헌화한 뒤 희생자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4·3사건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들도 희생된 데 대해 군과 경찰은 이날 처음으로 사과했다. 제주=뉴시스
“할머니는 물고기는 물론이고 멸치조차 드시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습니다. 부모 형제가 모두 바다에 떠내려가 물고기에게 먹혔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그런 아픔 속에서 사셨는지 몰랐습니다.”

정향신 씨(23·여)가 제주4·3사건에 얽힌 가족사를 할머니 김연옥 씨(78) 이야기로 풀어내자 곳곳에서 흐느낌이 들렸다. 4·3사건 당시 8세였던 김 씨는 제주 서귀포시 정방폭포 앞에서 군경에게 처형된 부모 형제의 시신이 바다로 떠내려가는 모습을 목격한 뒤 아픔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

제71주년 4·3사건 희생자 추념식이 3일 오전 제주시 봉개동 제주 4·3평화공원에서 열렸다. ‘다시 기리는 4·3정신, 함께 그리는 세계 평화’를 주제로 한 이날 추념식에는 생존 피해자와 희생자 유족 그리고 각계 인사 등 약 1만 명이 자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는 추념사에서 “제주는 4·3의 비극, 그리고 용서와 화해를 세계에 전파하는 ‘세계 평화의 섬’으로 거듭났다”며 “6월 유엔본부에서 열리는 ‘제주 4·3 유엔인권심포지엄’은 분쟁과 갈등을 겪는 세계 모든 지역에 4·3정신을 발신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어 “제주도민이 ‘이제 됐다’고 할 때까지 4·3의 진실을 채우고 명예를 회복해 드리겠다”며 “생존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대통령으로는 12년 만에 추념식을 찾았던 문 대통령도 페이스북을 통해 “진상을 완전히 규명하고 보상 문제와 트라우마 치유센터 설립 등 제주도민들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일에 더욱 힘을 기울이겠다.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챙기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추념식은 희생자들이 겪은 억압과 올 1월 불법 군사재판 재심 선고 공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4·3사건 생존 수형인 18명이 사실상 무죄라는 의미를 형상화한 퍼포먼스 ‘벽을 넘어서’로 시작했다. 추념식에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황교안 자유한국당, 손학규 바른미래당, 정동영 민주평화당, 이정미 정의당 대표 등 여야 지도부와 원희룡 제주도지사 등이 참석했다.

국방부는 이날 71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도민과 희생자에게 유감을 표명했다. 국방부는 “제주4·3특별법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미국을 방문 중인 정경두 국방부 장관 명의가 아닌 국방부 차원의 유감 표명이었다. 서주석 국방부 차관은 이날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애도했다.

민갑룡 경찰청장도 광화문광장에서 제주4·3범국민위원회 주최로 열린 ‘제71주년 제주4·3항쟁 광화문 추념식’에 나와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 사죄를 드린다.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경찰의 행위에 대해서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 수장이 4·3사건 관련 행사에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제주4·3특별법은 제주4·3사건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정부 심의를 거쳐 확정된 4·3사건 관련 희생자는 1만4363명, 유족은 6만4378명이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71주년 4·3사건 희생자 추념식#문재인 대통령#제주 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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