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동정민]돈 벌어본 마크롱의 메시지… “공무원, 기업인을 배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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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민 파리 특파원
동정민 파리 특파원
체류증을 갱신하러 프랑스 시테섬에 있는 경찰서를 찾았다. 약속 잡기가 워낙 어려워 만사 제치고 가야 하는 일이다.

오전 9시에 예약을 해도 오전 8시 이전에 도착해 줄을 서야 한다. 늦어서 오전 10시쯤 가면 그날 하루 치 업무가 마감돼 다시 날짜를 잡아야 하는데, 석 달 이상 밀린다.

그날도 기껏 오전 8시에 갔더니 경찰이 “오늘은 파업”이라며 돌아가라고 했다. 다음 날 같은 시간에 갔더니 “어제 왔어야 했는데 안 왔으니 안 된다”며 다시 돌아가라고 했다. “당신들이 파업을 해서 허탕치고 갔다”고 항의하자 생색내듯 그날 제일 마지막 순서에 넣어줬다. 결국 오후 2시에야 업무가 끝났다.

체류증을 처리하는 공무원은 그 방에만도 10명이 넘지만 워낙 속도가 느리다 보니 부지하세월이다. 공무원마다 요구하는 서류도 달라 프랑스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프랑스 공무원 하면 ‘사 데팡(Ca d´epend·경우에 따라 다르다)’이라는 말부터 떠올린다. 고생한 경험이 다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에게만 그런 줄 알았더니 최근 만난 한 40대 프랑스 남성은 “프랑스인들도 행정서류 처리하려면 하루 업무를 못 한다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공무원들의 속 터지는 행태를 개혁하고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칼을 들었다. 지난주 확정된 마크롱 대통령의 공무원 개혁 방향은 크게 두 가지, 바로 공무원 감축과 시스템 개혁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임기 내 공무원 12만 명을 줄이겠다는 대선 공약을 지키겠다고 지금도 말한다. 그러나 실현된다고 믿는 이는 없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40년간 좌우 어느 정권도 공무원을 줄이지 못했고 그 수는 증가하기만 했다. 마크롱 대통령도 취임 첫해 1660명, 그 이듬해 4164명을 줄이는 데 그쳤다. 그래도 공무원 수를 줄여 아낀 국가 재정을 청년 실업 교육과 미래 산업 투자에 쓰겠다는 신념은 확고하다.

그의 공무원 시스템 개혁 원칙은 간단하다. 기업처럼 일하라는 거다. 투자은행에서 돈을 벌어본 경험이 있는 마크롱 대통령은 정부에도 경쟁을 도입해 부서와 개인을 성과로 평가하고, 정부의 문턱을 낮춰 고위 공무원 자리에 민간인을 대거 영입하고, 공무원은 민간에 파견해 고인 물을 휘저어 보겠다고 했다. 프로젝트별로 기간을 정해 공무원으로 계약하는 방식도 공직 사회에서는 파격적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공무원 감축 개혁을 언급하면 한국에선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9%)을 내세워 프랑스(20%)는 물론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꼴찌 수준이라며 더 늘려야 한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서라도 공무원을 늘리자”는 접근법은 위험하다. 40년간 프랑스에선 인구가 18% 늘어나는 동안 공무원이 40% 증가했는데도 실업률은 급증하고 경제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이 떨어져 독일과의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공무원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것도 진리다.

각국 정부가 투자 유치를 위해 발 벗고 뛰는 시대다. 프랑스가 그렇게 뛰어가고 있다.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관성을 깨부수는 공무원 개혁의 목소리가 아직 한국에서는 들리지 않는 듯하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프랑스 공무원#공무원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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