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53〉삼촌의 선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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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90년.
빈센트 반 고흐 ‘꽃피는 아몬드 나무’, 1890년.
아몬드 꽃은 긴긴 겨울을 이겨내고 초봄에 가장 일찍 핀다. ‘꽃피는 아몬드 나무’는 빈센트 반 고흐가 자신의 조카에게 준 첫 선물이자 그의 37년 인생 마지막 봄에 그린 마지막 꽃그림이다.

1890년 2월 생레미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서 득남의 기쁜 소식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전에 말했듯, 아이 이름은 형 이름을 따서 지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형처럼 단호하고 용감할 수 있도록 소원도 빌었어.” 건강, 행복, 성공, 그 어느 것도 가지지 못한 자신의 이름을 조카가 물려받게 된 게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던 고흐는 조카를 위한 선물로 예쁜 꽃나무 그림을 그렸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분홍색과 흰색의 꽃이 핀 아몬드 나무 그림이었다. 그는 아를에 머물던 시절부터 많은 꽃나무 그림을 그렸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꽃과 꽃봉오리를 관찰해 그린 것도, 이처럼 밝은 색깔을 쓴 것도 처음이었다. 고흐 스스로도 인내심 있게 그려낸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과감한 구도, 나뭇가지의 굵은 윤곽선, 원근법의 부재, 밝은 색채, 평평한 배경 등은 당시 인상파 화가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일본 목판화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림을 받은 테오는 ‘너무너무 아름답다’며 아기 침대 위에 걸어 주었다. 이른 봄에 피는 아몬드 꽃은 새 생명과 희망을 상징한다. 또한 아몬드 나무는 부활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다. 고흐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암울하고 힘들었던 시기에 가장 희망적이고 밝은 그림을 그린 셈이다. 5개월 후 그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평생 ‘형바라기’였던 테오 역시 6개월 후 형을 따라갔다.

아기 빈센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삼촌이 준 꽃그림을 평생 애지중지했던 그는 훗날 반고흐미술관을 세워 삼촌의 모든 유작과 함께 기증했다. 삼촌에게서 받은 이름과 선물로 세계인이 찾는 미술관을 만든 조카의 모습을 화가 고흐는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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