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학계 “새 연호 令和, 中고전 영향받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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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문선 읽고 日 시가집 만들어져… 令月과 和, 특정 구절서 일치”
아베가 새 연호 점찍고 직접 회견… 野 “국민에 대한 통제 강화 느낌”

일본의 자부심 고취를 위해 새 연호 ‘레이와(令和)’를 중국이 아닌 일본 고전에서 최초로 인용한 일본 정부의 의도와 달리, 중국 영향이 상당하다는 학계의 지적이 나오고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2일 복수의 한문학자를 인용해 새 연호의 출처가 된 8세기 일본 고대 시가집 만요슈(萬葉集)가 6세기 중국 시문집 ‘문선(文選)’의 영향을 받았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는 만요슈 서문의 ‘초봄 영월(令月·상서롭고 좋은 달)에 바람은 부드럽다(風和)’는 문구 중 ‘레이(令)’와 ‘와(和)’를 한 글자씩 따 새 연호를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학자들은 바로 이 대목을 겨냥했다. 문선에도 ‘영월(令月)’과 ‘화(和)’라는 문구가 동일하게 등장한다는 점을 포착한 것이다. 와타나베 요시히로(渡邊義浩) 와세다대 교수는 “문선은 일본인이 많이 읽은 중국 고전이고 만요슈의 문장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라며 “동아시아 지식인은 모두 문선을 읽었다”고 했다. 특히 그는 “모든 유럽인이 그리스 로마 고전을 자신들의 고전이라고 하듯 (문선도) 넓은 의미에서 일본 고전”이라고 강조했다. 동아시아가 한자 문화권인 만큼 한자를 활용하는 한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측면도 있다.

아사히신문도 만요슈 서문이 중국 동진(東晉)의 정치가 왕희지(王羲之·307∼365)의 ‘난정서(蘭亭序)’를 바탕으로 해 일부 구절이 겹친다고 전했다. 만요슈 서문은 중국의 유명한 문장에 기반했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라고 덧붙였다.

야권과 여권 일부 인사들은 새 연호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색채가 지나치게 반영됐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사민당은 “레이(令)는 명령의 ‘令’이기도 해 아베 정권이 지향하는 국민에 대한 규율 및 통제 강화가 드러난다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도 “레이(令)가 갖는 의미를 제대로 조사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현재 연호인 ‘헤이세이(平成)’를 공표한 1989년 1월 당시 오부치 게이조 관방장관이 연호 발표와 총리 담화 대독을 모두 맡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연호 발표만 했고 아베 총리가 직접 나서 기자회견을 했다. 도쿄신문은 “마치 총리의 소신 표명 같았다. 위화감이 느껴졌다”고 보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마이니치신문#만요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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