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바람 뒤엔 유상훈의 겨울땀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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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실책성 2실점 뒤 출전 못해… 겨우내 맹훈련 하니 다시 기회
4경기 무실점 철벽 수문장 우뚝, 완벽한 3월 ‘이달의 선수상’ 유력

FC서울 제공
FC서울 제공
“눈앞이 캄캄했죠. ‘이걸로 나의 한 해는 끝났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프로축구 K리그1 FC서울 골키퍼 유상훈(30·사진)은 지난해 서울 소속으로 딱 한 경기에 출전했다. 2017년부터 상주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게 9월 초였으니 기회가 많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 경기로 그칠 줄은 몰랐다. 2015년 26경기, 2016년 21경기 등 전체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 그였기에 일단 기회만 잡으면 다시 양한빈(28)과 경쟁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운명의 9월 30일, 유상훈은 얼마 전까지 한솥밥을 먹던 상주 선수들에게 실책성 플레이로 2골을 내줬다. 2-2로 비긴 서울은 8연속 무승을 기록했고, 실낱같던 상위 스플릿의 꿈을 접어야 했다. 당시 이을용 감독대행은 “골키퍼를 바꿔 내보낸 게 가장 큰 실수였다”고 말했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기회가 조금 일찍 왔던 것 같아요. 그래도 내 잘못이지만요. 팬들의 비난도 거셌죠.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겨울 훈련만 기다렸습니다. 절박해서였을까요.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전과 다른 각오로 겨울을 보낸 유상훈이 모처럼 찾아온 ‘서울의 봄’을 지키고 있다. 서울은 지난달 3일 포항을 꺾고 8년 만에 개막전에서 승리했고, 10일 성남을 누르고 9년 만에 개막 2연승을 기록했다. 30일에는 3연승으로 선두를 달리던 상주마저 2-0으로 누르고 847일 만에 1위에 올랐다. 승점 10(3승 1무)을 챙기는 동안 3골에 그친 공격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12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4경기를 모두 지킨 유상훈은 최근 2경기 최우수선수(MVP)로 뽑혔다.

“최용수 감독님이 겨울 연습 경기 때부터 자주 기회를 주시더라고요. 개막전에 나서면서 ‘이번 기회만큼은 꼭 잡자’고 다짐했죠. 실수는 몇 번 있었지만 동료들이 잘해 준 덕분에 실점은 안 했네요.”

최 감독과 유상훈은 ‘작은 인연’이 있다. 최 감독의 프로 사령탑 데뷔전(2011년 4월 30일 제주 상대·당시 감독대행)이 유상훈의 프로 데뷔전이다.

“입단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후반에 교체 투입됐어요. 경기도 2-1로 승리해 기분이 좋았고요. 하지만 그해에도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 경기였죠.”(웃음)

‘완벽한 3월’을 보낸 유상훈은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올해부터 신설한 ‘이달의 선수상’ 첫 수상자로 꼽히고 있다. 데뷔 후 8년 동안 몇 차례 라운드 MVP에 선정된 것을 빼곤 상복과는 거리가 멀었던 그다.

“주면 감사하지만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요. 게다가 대구의 세징야(30·2골 2도움)의 ‘임팩트’가 너무 강하잖아요. 상도 좋지만 한 경기, 한 경기 골 안 먹는 게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양)한빈이와도 계속 경쟁을 해야 되고요. 당장의 목표는 동료들이 ‘뒤는 걱정 안 해’라고 할 수 있도록 믿음을 주는 골키퍼예요.”

이승건 기자 why@donga.com
#프로축구#k리그1#fc서울#유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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