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老老 세대차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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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를 맞아 경로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충북 보은군에는 ‘80세 이하 입장 불가’를 못 박은 특별한 경로당이 있다. 이름하여 ‘산수(傘壽) 어르신 쉼터 상수(上壽) 사랑방’, 80세를 뜻하는 산수와 100세를 의미하는 상수를 아우른 명칭이다. 초고령자 전용 ‘산수경로당’은 2011년 보은읍 삼산리에 국내 최초로 등장했다. 올 들어 3호가 마로면에 들어섰는데 문 열자마자 80∼93세 50여 명이 회원으로 등록했다.

▷보은군에서 경로당 회원이 될 수 있는 65세 이상 인구는 10명 중 3명꼴에 이른다. 이용자가 급증하면서 80세 이상 어르신들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젊은 세대의 눈에야 비슷한 연배로 보일지 몰라도 60대와 80대 사이에는 엄연히 세대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나이 차이가 있어도 언니동생으로 허물없이 어울리는 여성과 달리, 나이에 따라 위아래 서열을 따지는 남성의 경우 아버지와 자식뻘 세대가 터놓고 지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산수경로당은 노노(老老) 갈등의 해소 차원에서 유용한 공간인 셈이다.

▷고령화시대의 새로운 풍속도 중에는 노노(老老) 부양, 노노(老老) 간병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칠순 넘은 자녀가 90대 부모를 봉양하고, 꼬부랑 할머니가 자신보다 더 고령의 할아버지를 간병하는 모습도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몸도 성치 않고 경제력도 없는 노인이 이런 처지에 내몰리면 부양의 중압감, 간병의 부담에 시달리기 마련이다. 가정 내에서 또 다른 노노 갈등이 유발되면서 자살이나 살인과 같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까지 발생한다.

▷고무빈병(孤無貧病). 사자성어와 흡사하게 보이지만 우리 시대 노인의 고민을 압축한 표현이다. 고독하고 아무 할 일이 없는 데다, 빈곤과 질병을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 2017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4%를 넘으면서 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 그만큼 고무와 빈병으로 고통 받는 인구가 늘어나고, 고령화시대의 그림자는 넓고 짙어질 것이 분명하다. 가까운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에게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고령화시대#산수경로당#고무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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