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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安-이토 아들끼리 화해극 연출… 동아일보 보도않자 강제폐간 구실 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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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독부, 安-이토 아들끼리 화해극 연출… 동아일보 보도않자 강제폐간 구실 삼아”

조종엽 기자 입력 2019-03-25 03:00수정 2019-03-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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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미즈노 교토大 교수 논문서 밝혀
‘안중근 의거 20주년’ 본보 추모 기사 1909년 안 의사 의거 대한매일신보 보도를 전재한 동아일보 1929년 11월 10일자. 동아일보DB

“우리들이 조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기사는 묵살해 버리고, 그리고 매우 곤란한 기사를 싣는다.”

1940년 3월 9일 조선총독부 정무총감 오노 로쿠이치로는 일본 귀족원 예산위원회 제2분과회에서 한글로 발행되던 동아일보 폐간 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이렇게 답했다.

미즈노 나오키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전 교토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는 책 ‘한국과 이토 히로부미’(선인)에 실은 논문 ‘식민지기 조선에서의 이토 히로부미의 기억’에서 “박문사(博文寺)의 ‘화해극’을 전혀 보도하지 않은 동아일보의 자세를 총독부가 강제 폐간의 한 이유로 든 것이어서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문사의 화해극’은 1939년 10월 안중근 의사의 차남 안준생(1907∼1952)이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 이토 분키치에게 사죄하고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에 함께 가서 ‘화해’하는 장면을 연출한 조선총독부의 기획 이벤트를 말한다. 안중근 의사가 가지는 항일의 상징성을 어떻게든 무너뜨리려던 일제의 발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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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당시 한글과 일본어 발행 신문 가릴 것 없이 이 연출극을 보도했다.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 등은 ‘실로 조선통치의 위대한 변전사(變轉史)’ ‘참된 내선일체’라고 대서특필했다. 그러나 유일하게 동아일보만은 이 ‘박문사의 화해극’을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미즈노 교수는 “총독부가 조선인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 박문사의 ‘화해극’을 조선인이 경영하는 동아일보가 무시하자 강제 폐간의 한 구실로 삼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아일보는 1929년 하얼빈 의거 20주년을 맞아 ‘신문의 신문―과거의 금일’ 코너에서 의거 당시인 20년 전 관련 기사를 여러 차례 다시 실으며 추모했다. “안중근 나이 31세요 얼굴이 길고 코가 오똑한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고…경찰관을 대하여 강경히 말하되 우리들이 국가를 위하여 생명을 버림은 지사의 본분이거늘….”(1929년 11월 10일자)

김대호 국사편찬위원회 연구관은 “일제의 검열을 피하면서 의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총독부#이토 히로부미#미즈노 교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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