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2의 엘리엇 공세’ 대비해 경영권 방어 장치 강화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3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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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열린 현대차, 현대모비스 주총에서 미국계 행동주의펀드 엘리엇이 표 대결에서 완패하고 물러났다. 엘리엇은 지난달 주주들에게 발송한 주주제안에서 현대차 5조8000억 원, 현대모비스 2조5000억 원 등 총 8조3000억 원 규모의 배당과 자신들이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할 것을 요구했다. 압도적 표차로 현대차, 현대모비스 경영진이 제시한 안건들이 채택됨에 따라 엘리엇의 의도가 관철되지 못했다. 해외 투자의결자문사들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국민연금도 엘리엇의 요청에 등을 돌린 결과다.

주총 전에 이미 증권가에서는 엘리엇 측의 요구가 도를 넘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들이 요구한 배당금이 당기순이익의 3배가 넘는다. 또 사외이사로 요청한 인사 가운데는 경쟁관계에 있는 중국 기업의 임원이 포함돼 이해충돌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 많았다. 해당 기업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 따지고 보는 게 그동안 보여 온 행동주의펀드의 기본 속성이다.

올해 ‘현대차-엘리엇’ 사태는 이렇게 넘어갔지만 내년에는 또 어떤 허점을 파고들어 어떤 황당한 요구를 들이대며 우리 기업들을 흔들어댈지 모를 일이다. 연구개발투자 같은 장기적 이익보다는 당장 고(高)배당을 외치는 유혹의 목소리에 해외 투자자들이 넘어갈 소지도 있으며, 이런 일이 반복되면 기업의 장기 경쟁력이 떨어질 우려도 크다.

이번에 엘리엇은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 1% 이상의 주식을 6개월 전에만 보유하고 있으면 주주제안권을 갖도록 한 우리 상법 조항을 적극 활용했다. 미국 영국 등은 제안 건수를 1개로 제한하거나 권한 남용 방지를 위한 다양한 조치를 갖고 있다. 우리와 비슷한 일본은 그동안 주주제안권이 남발됐다고 보고 법무성이 주축이 돼 주주제안 행사 횟수를 제한하는 등 보다 엄격한 방향으로 법 개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이번 현대차-엘리엇 사례가 보여주었듯이 기업들이 투기적 펀드자본의 부당한 요구에 시달리지 않도록 경영권 방어 장치도 함께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오히려 기업을 무장 해제시키는 방향으로 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법 개정 사안인 만큼 국회가 나서는 수밖에 없다.
#엘리엇#현대자동차#소액주주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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