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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사회의 정치학, 美 대선에서도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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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팬지 사회의 정치학, 美 대선에서도 통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입력 2019-03-22 03:00수정 2019-03-2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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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동맹-배반 등 권력투쟁… 높은 곳 올라가 위엄과시 무리장악
美 대선서 키 큰 후보가 표 더 얻어… 트럼프, 영장류 정치수단 덕 ‘톡톡’
우간다에서 수컷 침팬지의 모습을 찍었다. 경쟁이 심한 수컷 영장류는 인간이 정치에서 보이는 것과 비슷한 권모술수를 쓴다. 국제동물복지기금 제공
침팬지의 우두머리 수컷이 도전자에게 패배한 경우 우두머리 수컷은 땅바닥에 뒹굴면서 가엾게 비명을 지르며 나머지 무리에게 위로받기를 기다린다. 마치 새끼 시절에 어미의 품에서 밀려났을 때와 비슷한 행동이다. 짜증을 내는 동안 어미의 반응을 계속 감시하는 새끼처럼, 우두머리도 무리를 주목한다. 주위 무리가 많이 남아 있다면 자신의 세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용기를 되찾고 라이벌과의 대결을 다시 진행한다.

반면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면 우두머리 자리를 잃는다. 이 경우 전임 우두머리의 말로는 비참하다. 모든 싸움 끝에 우두머리에서 밀려난 수컷 침팬지는 먼 곳을 응시하며 앉아 있다. 주위 무리의 활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공허한 표정을 짓는다. 몇 주간 음식을 거절하기도 한다.

세계적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 미국 에머리대 교수는 이달 12일 영국 가디언지에 낸 기고문에서 “미국 정치 1번지 워싱턴이 영장류화됐다”고 말했다. 미 정가를 비꼬는 말일 수도 있지만, 침팬지 무리의 정치가 그만큼 인간 사회와 비슷하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드 발 교수는 1982년 ‘침팬지 폴리틱스’라는 책을 내며 침팬지 사회에도 권력 투쟁이 있음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드 발 교수에 따르면 침팬지는 색다른 방식으로 우두머리를 뽑는다. 침팬지는 일대일 대결 외에도 인간의 정치처럼 복잡한 동맹과 배반을 통해 기존 우두머리를 쓰러뜨리기도 한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네덜란드 아른험 동물원에 사는 ‘이에룬’ ‘라윗’ ‘니키’라는 세 마리의 수컷을 관찰한 결과다. 드 발 교수가 처음 이들 무리를 접했을 때만 해도 늙은 이에룬이 우두머리를 맡고 있었다. 얼마 뒤 젊은 라윗이 이에룬을 누르고 우두머리가 됐다. 그러자 이에룬이 어린 니키와 협력해 라윗을 이겼다. 정치 신진을 동원해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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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우두머리를 니키로 내세운 채 이에룬은 뒤에서 암컷들과 교미를 즐겼다. 니키는 성숙한 이후 라윗과 이에룬이 싸우도록 유도해 권력을 유지하고 암컷도 독점했다. 다른 우두머리 후보들의 싸움을 통해 뒤에서 이익을 챙긴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이에룬과 싸워 큰 부상을 당한 니키 대신 라윗이 우두머리가 됐다. 드 발은 이를 보며 “정치학의 뿌리는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고 말했다.

영장류는 서식지의 물리적 위치를 정치 수단으로 이용한다. 우두머리가 나무 그루터기 위로 올라가 높은 왕좌에서 무리를 내려다보거나, 무리 한가운데로 나무에서 내려오는 것이 대표적이다. 위치를 이용해 무리를 장악하는 방식은 인간 정치에서도 통한다. 2013년 헤르트 스튈프 네덜란드 흐로닝언대 행동 및 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은 역대 미국 대선 후보자의 키와 득표수의 상관관계를 비교했더니 키가 큰 후보자가 표를 조금 더 많이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계간 리더십’에 발표하기도 했다.

영장류의 정치 수단을 가장 잘 이용하는 정치인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드 발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 공화당 경선 과정에서 마치 수컷 침팬지가 으르렁대듯 낮게 깐 목소리로 상대 후보를 별명으로 부르며 깔봤다. 이런 수컷 전략은 상대 주자이던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에겐 통하지 않았지만 유권자를 사로잡기엔 충분했다. 언론 대부분이 트럼프의 패배로 평가했던 TV 토론회에서 트럼프는 클린턴 뒤를 다급하게 돌아다니거나 의자를 강하게 부여잡는 모습을 보였다. 생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트위터로 클린턴에게 “뒤를 봐”라고 경고할 정도였다. 영국 정치인 나이절 패라지는 트럼프를 “마치 힘겹게 가슴을 치는 늙은 수컷 고릴라 같았다”고 평가했다. 드 발 교수는 “그가 수컷 침팬지였다면 의자를 집어던지며 힘을 과시했을 만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침팬지#권력투쟁#위엄과시#도널드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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