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걸크러시]〈26〉국경을 넘나들며 사랑을 지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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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에 여러 어려움이 있다고 하지만 나는 경험이 많단다. 일본에 있던 시절 배를 집 삼아 봄이면 복건성, 광동성 일대에서, 가을에는 유구(오키나와)에서 장사를 했어. 거센 바람, 거친 파도를 헤치고 다녀 밤하늘의 별을 보고 조수(潮水)를 점치는 데 익숙하단다. 그러니 바람과 파도의 험난함은 내가 감당할 수 있고, 항해의 온갖 위험도 이겨낼 수 있단다. 혹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있다 한들 해결할 방도가 왜 없겠니?”

― 고전소설 ‘최척전’ 중에서


나라에 변고가 생기거나 전쟁이 나면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은 힘없는 노약자와 여성이다. 그들은 젊은 남성들처럼 나가 싸울 수도 없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가 여의치 않다. 하물며 가장이 없는 집안의 상황은 오죽하겠는가. 부친을 여읜 후 힘든 어린 시절을 극복하고, 전쟁 중 남편과 이별해 적지에서 힘든 포로생활을 하면서도 이를 슬기롭게 극복한 여성 캐릭터가 있었는데, 그녀가 바로 ‘최척전’의 여성 주인공 옥영이었다.

옥영은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하고 수많은 난관을 뛰어넘어 사랑을 완성시켰다. 옥영은 난리를 피해 어머니와 함께 친척집에서 거처하던 중 한 남성을 만난다. 그는 뛰어난 외모와 학문적 역량을 갖춘 최척이었다. 최척의 잠재성을 알아본 옥영은 주저하지 않고 그에게 혼인 의사를 표하였고 최척도 마음을 주었다. 그러나 최척의 가난이 그들의 첫 번째 난관이었다. 딸 가진 세상의 부모가 대체로 그렇듯 잠재력만 믿고 흔쾌히 사위를 삼겠다는 집은 드물다. 옥영의 모친도 예외는 아니었지만 영민한 옥영은 모친을 설득해 혼인을 성사시킨다.

그런데 혼인 직전에 두 번째 변수가 찾아온다. 전쟁이었다. 최척이 출전하면서 기약 없는 이별이 찾아온다. 전쟁터로 나간 남편감은 돌아올 기약이 없었고 옥영의 어머니는 부유한 남자를 사위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자아가 강하고 간절한 사랑을 하고 있던 옥영은 자살 시도로 어머니의 뜻을 거부한다. 최척 역시 전쟁터에서 옥영에 대한 간절함으로 병을 얻었다. 결국 옥영의 어머니도, 최척의 상관도 이들의 간절함을 막을 수 없었으며, 이들은 사랑의 결실을 이룬다.

그러나 옥영의 고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그것은 임진왜란이었다. 옥영은 남장을 한 채 왜장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잡혀가고, 최척은 명나라 군인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가게 된다. 이후 이들은 모두 배를 타고 장사를 하는 일에 종사하는데 베트남에 있는 어느 항구에서 극적으로 상봉한다.

그녀는 중국 생활 중 늘어난 식구들과 함께 귀국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배를 타고 황해를 건너는 것이었다. 옥영은 타지생활 덕분에 일본어 중국어를 할 수 있었고 일본, 중국, 조선의 복장도 준비했다. 그녀는 배를 마련하고 장사할 때 익힌 항해술을 발휘해 귀국에 성공한다. 무려 30년 만이었다. 이렇게 옥영이라는 여성은 동아시아 최대의 전쟁이었던 임병양란을 통해 만들어지기 시작해 조선, 일본, 베트남, 명나라, 청나라를 아우르는 대서사 속에서 사랑과 가족에 대한 간절함으로 완성됐다.

임현아 덕성여대 언어교육원 강사
#최척전#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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