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해제 당한 한민족, 민족의식으로 갑옷과 무기 삼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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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번역원, 조소앙 선생 대표문집 ‘소앙집’ 내달 최초 완역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건국강령을 기초한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은 ‘소앙집’에서 국내외 동포와 세계 각국을 향해 일제가 한국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실상을 정치, 경제, 교육 등 분야별로 조목조목 밝혔다. ①1932년 9월 중국 상하이에서 간행된 ‘소앙집’ 앞뒤 표지. ②목차 하반부 등이 담긴 친필 원고. 조소앙 선생 후손 조인래 씨 제공
대한민국 임시헌장과 건국강령을 기초한 독립운동가 조소앙 선생은 ‘소앙집’에서 국내외 동포와 세계 각국을 향해 일제가 한국을 무자비하게 억압하는 실상을 정치, 경제, 교육 등 분야별로 조목조목 밝혔다. ①1932년 9월 중국 상하이에서 간행된 ‘소앙집’ 앞뒤 표지. ②목차 하반부 등이 담긴 친필 원고. 조소앙 선생 후손 조인래 씨 제공
《“헌법학자로서 일본 헌법을 연구하다가 한국의 현행 헌법은 1919년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임시헌법을 잇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본의 헌법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맥아더 군정이 만들어 준 것인 반면 한국의 헌법은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 항거하여 쟁취한 헌법이란 차이를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

사사가와 노리카쓰 일본 국제기독교대 명예교수는 3·1운동 때 체포된 한국인들의 법원 판결에 관한 연구를 하는 동기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지식산업사 간행 ‘3·1독립만세운동과 식민지배체제’). 바로 이 ‘대한민국 임시헌장’(헌법)을 기초한 이가 독립운동가 조용은 선생(1887∼1958·사진)이다. 필명이자 호(소앙·素昻)로 많이 알려져 조소앙 선생으로 불린다.

조소앙 선생의 대표적 문집으로 대한민국 건국강령(1941년)의 바탕이 된 삼균주의(三均主義·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추구) 사상이 깔려 있는 ‘소앙집’이 최초로 완역된다.

한국고전번역원은 “조소앙 선생의 글은 순한문이나 국한문 혼용체로 쓰여 평범한 시민이 깊게 이해할 기회가 적었다”며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선생의 ‘소앙집’과 ‘유방집’, ‘여협남자현전’을 번역해 출간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소앙집은 다음 달 간행되며, 항일 의열사 81명의 공적을 담은 유방집과 여성 독립운동가 남자현 의사(1872∼1933)를 조명한 여협남자현전은 한 권으로 묶어 올 8월 출간할 계획이다.

선생은 1930년 한국독립당을 창당하고 삼균주의를 창시했으며 1941년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기초했다. 1932년 중국 상하이에서 간행된 소앙집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상황을 정치·경제·교육으로 나눠 분석하고 일제를 비판한 논문과 역대 사회제도와 3·1운동까지의 혁명운동을 정리한 글, 임시정부 등 명의로 발표한 각종 선언서가 담겼다.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 한 장을 할애해 마치 파노라마처럼 서술하기도 했다. 조소앙은 “한국 민족은 일본에 무장 해제를 당했으나 스스로 깨달은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갑옷과 무기로 삼았다”고 썼다.

소앙집은 객관적 자료와 명료한 논리가 특징이다. 일제의 탄압과 유린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동아일보 보도를 되풀이해 인용하기도 했다.

“1929년 8월 6일, 한글 신문인 동아일보에 사설이 실렸는데 제목이 ‘극단으로 제한된 언론 집회’였다.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노총(勞總·노동동맹), 농총(農總·농민동맹), 청총(靑總·청년동맹) 세 총맹(總盟)의 집회를 금지한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심지어 각 지방의 청년회 강습소, 학생 연구회 등 현존하는 모든 단체가 다 봉쇄되고 해산되었으며, 그 밖의 강연회와 연설회도 금지의 대상이 되었다. 갑산(甲山) 화전민 충돌 사건에 대해 또 조사반의 출범과 기사 게재를 제한하고 이어서 이 사건을 알리는 연설회를 금지하는데, 혹 압박하는 일을 반대하는 연설회도 금지한다. …”(‘소앙집’에서)

선생은 “국내 한글 신문은 이미 착취당하고 탄압을 받아 비록 양껏 드러내지 못하였지만 (자유를) 제한받은 정도가 여기에서 반증된다”고 덧붙였다.

또 전국의 항일운동을 나열하고 ‘정치범’에 대한 중형을 비판한 동아일보 1930년 3월 8일자 ‘법정에 나타난 조선상’ 기사를 인용하며 “이 기사를 통해 살펴보면 학생계가 해방 운동을 도모하는 것이 전국에 가득 퍼져서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들며 산을 감싸고 언덕을 넘을 기세이니, 참으로 혁명사에서 색다른 사례”라고 쓰기도 했다. 광주학생항일운동 이전 ‘의열단 사건, 보천교 사건, 임시정부 사건, ML당 사건, 간도 격문 사건’ 등 항일운동의 활성화를 묘사하면서 “한글 신문인 동아일보 등의 신문에서 적극적으로 선전해 민족의식을 충분히 부추길 수 있었고, 아울러 혁명의식을 환기시킬 수 있었다”고 썼다.

김보성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소앙집 번역본 해제에서 “소앙집에는 고국의 참혹한 현실을 국내외에 알리고 항일투쟁 궐기를 촉구한 독립운동가의 투혼이 여실히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소앙집#조소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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