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껏 떠드세요” 발달장애인 위한 도서관 문 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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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시끄러운 도서관’ 시범 사업
따가운 시선에 일반도서관 못가는 경계성 지능 장애인 등에 개방
은평-마포-송파구 6개 도서관에 전문 사서 배치… 책-학습자료 구비
6, 7월부터 프로그램 본격 운영

서울 성동구에 사는 A 씨(36·여)의 아들(8)은 발달장애가 있다. A 씨는 아들이 학교를 파하고 학원에 가기 전까지 시간이 빌 때나 주말이면 아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가곤 했다. 아이가 책 보는 걸 좋아해서다. 하지만 갈 때마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했다고 한다. 갑자기 큰 소리를 내거나 뛰는 아들에게 다른 사람들은 따가운 시선을 보냈다. 사서에게까지 주의를 받자 도서관을 향하던 발길을 끊었다.

A 씨 아들 같은 이들도 앞으론 부담 없이 책을 보고 학습할 수 있는 도서관이 생긴다. 발달장애나 경계성 지능(지능지수 85 안팎) 장애인같이 ‘느린 학습자’를 위한 ‘시끄러운 도서관’이 올해 서울에 문을 연다. 서울시는 3개 자치구 도서관 6곳을 시끄러운 도서관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했다고 11일 밝혔다.

느린 학습자는 학계 등에서 발달장애인에 경계성 지능 장애인을 더한 개념으로 쓰고 있다. 이들은 도서관의 기존 자료나 서비스를 사용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정숙을 약속하는 기존 도서관과는 달리 시끄러워도 괜찮은 도서관이 필요하다.

시범사업에 선정된 은평구 구립·증산정보·뉴타운도서관, 마포구 중앙·푸르메도서관, 송파구 글마루도서관은 이달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확정짓고 다음 달까지 지역주민 대상 간담회를 거쳐 6, 7월 느린 학습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컴퓨터로 정보를 습득하는 데 익숙지 않은 느린 학습자에게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주고 놀이나 게임으로 독서에 흥미를 갖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주가 된다. 도서관 회원 가입과 도서 대출, 반납 절차 등도 쉽게 바꾸거나 이용법을 쉽게 이해하도록 설명을 바꾸는 방안도 검토한다. 이들의 부모도 함께 책을 읽거나, 책읽기 교육법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계획이다.

은평구립도서관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마련해 문장이 짧고 쉽게 서술된 책과 학습 자료를 구비할 예정이다. 소음을 내도 밖으로 울리지 않도록 방음시설을 갖추고 발달장애인의 돌발 행동에 대처할 수 있는 사서들이 배치될 예정이다. 소음에 개의치 않는 비장애인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소통하는 장소로 만들 방침이다. 서울시와 은평구는 늦어도 10월에는 별도 학습공간을 개방할 계획이다.

서울시에는 2016년 기준 약 3만 명의 발달장애인이 산다. 경계성 지능 장애인은 구체적인 통계는 없지만 전문가들은 각급 학교당 3명 정도로 본다.

시끄러운 도서관 시범사업은 피치마켓 함의영 대표(38)가 처음 제안했다. 피치마켓은 느린 학습자를 위한 학습 콘텐츠를 제공하는 비영리단체다. 함 대표는 1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피치마켓의 독서활동 프로그램에 3년간 2000명이 넘게 참여할 정도로 독서에 대한 수요가 높다. 충남 천안에서 매주 고속철도(KTX)를 타고 오는 경우도 있었다”며 “책 읽을 곳이 없다는 보호자들의 하소연을 듣고 시에 제안하게 됐다”고 말했다. 함 대표는 이어 “공간보다 도서관 이용자와 사서의 인식이 변화해야 한다. 느린 학습자도 당연히 도서관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하는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끄러운 도서관 사업을 진행하는 서울도서관 관계자는 “공간이 줄어들 수 있고 일부 도서관은 규정이 바뀔 수 있어 비장애인이 불편하겠지만 사각지대에 놓인 느린 학습자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설득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서울시#시끄러운 도서관#느린 학습자#발달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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