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풀지않은 나라들, 우리 따라잡으려면 10년 넘게 걸릴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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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천국’ 이스라엘 현지르포

7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아워크라우드’의 주최로 열린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에는 스타트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1만8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왼쪽 사진). 이스라엘 병원에 ‘인공지능(AI) 의사’를 선보인 스타트업 
‘지브라 메디컬’(오른쪽 사진)도 참여해 자사의 기술을 설명했다. 예루살렘=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7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아워크라우드’의 주최로 열린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에는 스타트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반영하듯 1만8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왼쪽 사진). 이스라엘 병원에 ‘인공지능(AI) 의사’를 선보인 스타트업 ‘지브라 메디컬’(오른쪽 사진)도 참여해 자사의 기술을 설명했다. 예루살렘=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아직 규제가 풀리지 않은 나라들이 많은데 그들이 우리를 따라잡으려면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겁니다.”

6일(현지 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볼파마’ 본사. 여기서 만난 이 회사 최고경영자(CEO) 타미르 게도 박사는 자신만만했다. 볼파마가 자랑하는 것은 바로 의약용 대마초 상품들. 아직까지 상당수 국가에서 의약용 대마초 재배가 불법인 반면 이스라엘은 1992년 세계 최초로 이를 허용했다.

그 후 볼파마는 어떻게 하면 균일한 품질의 대마초를 재배할 수 있는지, 어느 질병에 효과가 있는지 등을 연구해 왔다. 그 결과 이제는 캡슐, 크림 등 다양한 형태의 의약용 대마초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날도 기자가 찾은 본사 옆 대형 온실에서는 온도, 햇빛의 양이 조절된 상태로 의약용 대마초가 자라고 있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이 같은 스타트업들을 위해 의약용 대마초 수출을 허용하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게도 박사는 “8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캐나다, 유럽 등지에 수출한다”고 말했다.

인구 860만 명의 이스라엘이 국가의 명운을 걸고 선택한 것은 바로 ‘스타트업’ 육성. 이들 기업은 정부와 대학, 벤처캐피털의 삼각 지원을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를 풀어주고 대학은 인력을 기른다. 또 시장에선 될성부른 스타트업에 자본을 투자한다. 스타트업은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만 있으면 충분하다.

한국 기업들이 미세먼지처럼 도처에 깔린 규제로 신음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나마 규제를 선제적으로 풀어주는 정부의 ‘규제 샌드박스’ 심의에서조차 최근 한 스타트업 대표가 “무조건 안 된다는 정부 모습에 의욕을 잃었다”며 회의장을 나가버리기도 했다.

○ 어릴 때부터 ‘스타트업 DNA’ 기른다

이스라엘에선 학생 때부터 미래의 스타트업 CEO가 되기 위한 창의적 교육을 받는다. 지중해가 한눈에 들어오는 텔아비브 페레스 평화·혁신센터. 5일 찾은 이곳은 어린 학생들이 창업자를 꿈꾸게끔 영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었다. 1층에선 교수, CEO들의 창업 도전기를 ‘홀로그램’ 영상으로 접할 수 있었고, 지하에는 현재 이스라엘의 대표 스타트업 30여 곳의 기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꾸며져 있었다.

대학도 창업자 발굴과 육성에 전념한다. 히브리대는 1964년부터 ‘이숨’(히브리어로 ‘실행’)이라는 기술 이전 회사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대학이 책임지고 교수들의 혁신적인 연구를 상용화시키고, 기업으로 발전시킨다. 이숨은 55년간 1만여 개의 특허와 2800여 건의 발명을 지원하며 900여 개의 라이선스와 176개의 기업을 탄생시켰다. 히브리대에서 만난 이숨의 CEO 야론 다니엘리 박사는 “17조 원에 달하는 가치를 인정받고 2017년 인텔에 인수된 ‘모빌아이’(자율주행차 부품업체)도 히브리대의 작은 실험실에서 출발했다”고 했다.

○ 스타트업 도전, 투자를 모두 응원하는 분위기


이 같은 국가적 노력의 결과 이스라엘은 헬스케어, 정보보안, 모빌리티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6500여 개의 기술 스타트업을 거느리고 있다. 이 가운데는 글로벌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알짜’들이 적지 않다. 그중 하나인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인튜이션 로보틱스’는 노인들을 위해 개발한 로봇 ‘엘리큐’로 시장의 주목을 받았다. 아마존의 에코나 구글홈이 스마트한 비서 역할을 한다면 인튜이션 로보틱스의 엘리큐는 적극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말을 걸며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준다. 인튜이션 로보틱스의 도르 스쿨레르 CEO는 “엘리큐를 사용한 70, 80대 노인들은 이들을 로봇이 아니라 ‘동반자’로 묘사한다”며 “그게 다른 AI들과 가장 큰 차이”라고 밝혔다. 엘리큐로 기술력을 인정받은 이 회사는 도요타와 협업 중이며 삼성에서도 투자를 이끌어냈다.


스타트업 창업에 도전하거나 투자를 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7일 예루살렘에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아워크라우드 주최로 열린 ‘글로벌 인베스터 서밋’에도 개인투자자를 중심으로 1만8000여 명의 인파가 몰렸다. 한국예탁결제원과 대구시의 지원으로 처음 이곳을 찾아 ‘코리아 파빌리온’ 부스를 설치하고 전 세계 투자자들을 만난 한국 청년들은 이스라엘 창업 생태계에 부러움을 표시했다. 금융 빅데이터 기업 딥서치의 파이낸스 담당 양태민 씨는 “한국에서 회계사로 일하다가 창업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말렸는데 여기선 스타트업 도전을 다들 응원하고 지원하는 것 같다”며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한국과 가장 큰 차이”라고 했다.

예루살렘·텔아비브=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이스라엘#스타트업#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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