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노영준]구도심의 노인들, 어디로 가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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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준 재능대 명예교수
노영준 재능대 명예교수
인천에서 배로 10분 거리에 있는 신도에는 섬마을 곳곳마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고, 주택들도 개량해 반듯반듯한 모습으로 서 있다. 조금 더 가면 또 다른 섬 덕적도가 있고, 다시 40분 거리에 문갑도가 있다. 60여 가구밖에 안 되는 작은 섬마을이지만 곳곳이 아스팔트로 깔끔하게 포장돼 있고, 언덕 위의 집들도 그림같이 아름답다. 특히 이 작은 마을에 보건소가 있어 누구든 무료로 약을 처방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대문 앞에서 혈압을 재는 할머니들을 동네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 결과다.

때가 되면 하얀 병원선이 섬에 정박해 섬 주민들을 위해 건강진단도 해준다. 또 공공근로라 하여 주민들은 마을 청소를 공동으로 하고 근로 수당을 받는다. 각종 명목으로 지급되는 노인복지 수당 중의 하나다.

그런데 복지와는 다소 거리가 먼 다른 세상에 사는 노인들이 있다. 바로 대도시의 구도심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다. 대다수가 오랫동안 한동네에 살아온 터줏대감인 이들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대도시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이러한 복지 혜택에서 제외된다. 더욱이 사는 마을이 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재개발이 추진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단독주택에 살던 사람이 이사를 가면 건축업자들이 경쟁적으로 이를 사들여 다가구 빌라를 짓는다. 이런 식으로 인천의 구도심은 거의 대부분 빌라촌이 돼 버렸다. 이런 빌라촌은 도시 미관과도 거리가 있다. 재개발사업 추진의 원동력으로 기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주민들은 반대를 해도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재개발의 돌풍에 휘말리게 된다. 재개발사업은 보통 정부 지원 없이, 거주하는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추진한다. 이를테면 건축설계비, 외주용역비, 상하수도, 도로시설 및 녹지 공간 조성비 등 각종 개발비가 원인자 부담으로 돼 있어 사업비 명목으로 자체 해결해야 한다. 따라서 자신이 소유하고 살아온 집과 땅은 시세가 아니라 감정가로 가격이 매겨져 반 토막 난다. 이 보상가로는 새로 짓는 아파트에 들어갈 수가 없다. 분양가는 터무니없이 비싸고 게다가 조합 운영비마저 부담해야 하므로 이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결국 어찌 할 수 없이 살던 곳에서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어느 구역은 정부 예산으로 주거시설은 물론이고 주변 환경까지 깔끔하게 정비해 주는 데 반해 다른 구역은 노인들이 완강히 반대하는데도 한 구역 전체를 정비한다며 강제로 노인들의 재산을 반 토막 낸다. 정부가 주도하는 일이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이런 지역에 사는 노인들의 소원은 오직 하나다. 그들은 정부 지원도 바라지 않는다. 노인들을 내쫓는 재개발을 중단하고 오랜 세월 살아온 곳에서 이대로 살게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들의 하소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요즘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여러 가지 사적인 사건이 올라오고 처벌해 달라는 청원이 쏟아진다. 하지만 구도심에서조차 밀려날 노인들과 정부의 미흡한 대책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구도심 음지의 이 노인들은 정녕 갈 곳이 없다.
 
노영준 재능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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