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렁한 제조업 도시 ‘고용한파 → 집값폭락 → 소비위축’ 악순환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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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지방경제]직격탄 맞은 창원-군산 부동산시장


지난달 28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의 ‘창원 롯데캐슬 프리미어’ 아파트 본보기집 앞에는 ‘분양가 안심 보장’ ‘중도금 무이자’ 등의 플래카드가 펄럭이고 있었다. 필사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본보기집 내부는 사람이 없어 휑한 분위기였다. 분양 관계자는 한숨을 쉬며 “재개발조합에서 임대 전환을 고민하느라 분양계약이 잠정 중단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분양을 시작한 이 단지는 일반분양 545채 가운데 이날까지 계약된 건 68채에 불과했다. 한 60대 조합원은 “제조업 경기가 안 좋아 살던 사람들도 창원을 떠나는 판에 임대로 돌린다고 들어올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소화불량 미분양, 분양권엔 ‘마이너스피’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제조업 기반이 무너진 지방도시에서는 미분양 아파트가 쌓여가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5일 현재 미분양이 많아 추가 공급을 제한하기 위해 시군구 단위로 지정하는 ‘미분양관리지역’은 총 38곳인데 이 중 33곳이 비수도권에 있다.

수년간 분양이 몰렸던 창원에서는 미분양 아파트들이 대거 임대로 전환할 계획이라 ‘폭탄 돌리기’라는 말까지 나온다. 마산회원구 ‘e편한세상 창원센트럴’(908채)은 국토교통부에 최근 공공지원 민간임대 사업을 신청했고, 마산합포구 ‘월영부영’(4298채)도 임대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임대 전환으로 급한 불은 꺼도 대규모 임대물량이 쏟아지면 전·월세 시장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마산합포구의 B중개업소 대표는 “불경기에 분가한 자녀도 다시 불러들이는데 그 많은 임대아파트에 누가 들어가 살겠나”라고 했다.

새 아파트는 분양가보다 수천만 원 낮은 ‘마이너스피(마피)’가 붙어도 거래가 드물다. 올 6∼12월 입주하는 창원시 의창구 ‘창원유니시티’ 아파트 1∼4차 분양권은 분양가보다 최대 5000만 원이나 값이 내린 상태다. 2016년 1, 2단지 분양 때 2146채 모집에 청약통장 20만6764개가 몰려 화제가 됐던 곳이다. 인근 C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은 “청약에 떨어진 사람들은 수천만 원 싸게 골라잡을 수 있는데 당첨자들은 3년간 이자만 2000만 원 가까이 물었다”고 전했다.

○ 공장 문 닫자 불 꺼진 헌 집만 늘어

현대중공업 조선소, 한국GM 군산공장이 차례로 문을 닫은 전북 군산시는 인구가 줄면서 기존 집들도 비어가고 있다. 군산시 오식도동의 한 원룸촌은 2, 3년 전 보증금 100만 원에 25만∼35만 원이던 월세가 현재 15만∼25만 원으로 내렸다. 인근 공단 근로자들이 많이 살던 곳이지만 지금은 절반 이상 비어있다. 군산시는 지난해 하반기(7∼12월) 지방의 8개 도 내 시군구 중 고용률(53.1%)이 가장 낮았다.

불황의 여파는 ‘군산의 강남’으로 불리는 수송동도 비켜가지 않았다. 이 일대 중개업소에 따르면 ‘한라 비발디’ 전용면적 100m² 아파트의 매매가격은 2, 3년 전보다 5000만 원가량 떨어졌다. 한때 군산공업단지에 다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 아파트였지만 지금은 수개월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 빈집이 생길 정도다. 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군산에서 보기 드문 ‘초품아(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인데도 집값이 계속 떨어지니까 사람들이 매수하길 꺼린다”고 했다.

○ 경기 침체-집값 하락-소비 위축의 악순환

창원시와 군산시의 상권은 얼어붙어 있었다. 창원시청 근처 문화의 거리에는 1층 점포조차 비어있는 건물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용호동 J공인중개사사무소 소장은 “경기가 좋을 때는 서로 들어가려던 상권인데 지금은 월세도 10% 정도 내렸고 1억 원가량 하던 권리금 없이 내놓는 가게도 많다”고 했다. 군산시 오식도동은 상당수 가게가 폐업하고 건물마다 ‘임대’ 딱지가 붙어있었다. 칼국숫집을 하는 이경미 씨(49·여)는 “손님이 하루에 한 명도 없는 날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지역 주민들은 “제조업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경제를 정부가 각종 부동산대책으로 고사(枯死)시켰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집값을 잡으려는 대출 규제, 다주택자 규제가 지방 주택시장을 더 망가뜨렸다는 것이다. 마산회원구에 사는 이모 씨(45·여)는 “학교에서도 중간 성적인 애한테 맞춰야 수업이 진행되는 건데 정책이 서울에만 맞춰져 지방은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말했다.

지방 주택시장이 나빠지면서 지방 소재 중소 건설사들이 자금난으로 부도를 내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부도 처리된 건설사 총 10곳 중 9곳이 수도권이 아닌 지방 소재 회사였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와 집값 하락의 악순환을 끊으려면 일자리를 만들어 지역 경제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월급을 받아야 소비도 하고 집도 사는데 현재 지방은 경제위기 수준”이라며 “정부가 기업유치 등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주애진 jaj@donga.com / 군산=조윤경·김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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