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 위의 구도자’ 쇼팽과 밤길을 걷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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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녹턴’ 음반 발매
“쇼팽의 세계 새롭게 해석, 앞으로는 음반 녹음에 집중”
11개 도시 돌며 쇼팽 리사이틀

백건우는 “쇼팽 녹턴을 연주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악보를 비교해 보았고, 강세 표시 등의 오류를 상당 부분 고쳐 바르게 연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백건우는 “쇼팽 녹턴을 연주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악보를 비교해 보았고, 강세 표시 등의 오류를 상당 부분 고쳐 바르게 연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DB
‘건반 위의 구도자’가 이번에 택한 순례 길은 고즈넉한 밤길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3)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녹턴(Nocturne·야상곡) 전 21곡을 담은 음반을 5일 발매했다. 지난해 9월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한 앨범. 녹턴 중 여섯 곡과 발라드 1번 등 쇼팽 작품들로 전국 리사이틀도 연다. 12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다음 달 20일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까지 11개 도시를 순례한다. 여정 중간에는 다음 달 2일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한 세 곳에서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가 5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새 음반과 리사이틀에 담긴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베토벤의 소나타들을 녹음할 때, 마침 스튜디오에 쇼팽 녹턴의 악보가 있기에 훑어보았어요. 줄리아드음악원에 다니던 시절 이미 쳤던 곡이지만 새롭게 보이더군요.”

새롭게 열린 시각으로 쇼팽의 세계를 다시 해석해 보고 싶어 그에게서 영향 받은 작곡가들 작품까지 들여다보다가 다시 돌아왔다. “무엇이 쇼팽의 세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야상곡으로 돌아오게 됐죠.”

쇼팽은 큰 홀에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작은 살롱에서, 친구들 앞에서 자기 곡을 치고 내면의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직접 들은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어떨 때는 잘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쳤다고 하죠. 그러나 그 감동은 너무나도 컸답니다.” 절대 일정한 볼륨을 넘어서지 않는 그의 말투를 생각나게 한다.

지난해 통영에서 녹음해 5일 발매된 쇼팽 녹턴(야상곡) 전곡 앨범. 유니버설뮤직 제공
지난해 통영에서 녹음해 5일 발매된 쇼팽 녹턴(야상곡) 전곡 앨범. 유니버설뮤직 제공
이번 녹턴 앨범은 연주자 스스로 생각한 순서를 따랐다. 1번으로 시작하지만 11번, 12번, 2번 식으로 이어진다. “쇼팽은 순서대로 연주할 걸 의식하고 쓰지 않았어요. 어떻게 작품을 제시할 때 더 제대로 들릴 것인지가 (번호순보다) 중요하죠.”

그는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할 때마다 전국을 돌았다. 외딴섬 학교에서도 공연을 펼쳤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문화의 혜택을 잘 누리기를 꿈꾸죠. 들어볼 기회가 없으면 알지 못하게 되니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음악 하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공연장과 피아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종일 음향을 체크하며 최적의 소리를 찾기로 정평이 났다.

앞으로는 음반 작업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를 의식한 생각으로도 들렸다. “연주는 순간에 끝나지만 녹음은 남아요. 학생 시절에 드뷔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방에서 종일 들으며 가슴이 뛴 일이 있는데, 그런 감흥은 음반만이 줄 수 있죠.”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협연하는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교향악단은 과거 ‘소련 국립 교향악단’으로 알려진 오케스트라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카리스마 넘치고 명확하다’고 칭찬한 아르망 티그라니얀이 지휘봉을 든다.

마침 5월 24일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시빌리도, 6월 20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베조드 압두라이모프도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곡으로 선택했다. 백건우는 지난해 1월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서 이 곡을 협연한 바 있다. 그는 “연주 역사를 살펴보면 대가들의 소리는 따로 있다. 음악세계가 뚜렷하지 않으면 수많은 연주자들과 다를 게 없다”며 색깔이 뚜렷한 연주를 자신했다.

부인 윤정희 씨는 이번 간담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백건우는 “아내가 당뇨로 병원에 있어서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피아니스트 백건우#녹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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