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성환]착한 소비가 동물을 구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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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환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허성환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지난해 겨울 가장 인기를 끈 아이템은 단연 검은색 롱패딩이었다. 특히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시즌에는 한정판 제품을 사려고 백화점 앞에 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롱패딩의 소재는 대부분 구스다운, 즉 거위털이다. 거위털의 함량이 얼마나 많은가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거위의 목과 가슴에 있는 부드러운 솜털 즉, 다운(Down)은 가볍고 따뜻해 겨울옷, 이불, 베개 안의 솜으로 많이 쓰인다. 식용이나 산란용으로 사육되는 오리와 거위는 보통 생후 10주부터 솜털을 뜯기 시작하는데 털을 뽑고 다시 자라면 또 뽑고를 6주 간격으로 한다. 거위 한 마리에서 나오는 깃털과 솜털은 최대 140g 정도로 패딩 한 벌을 만들려면 보통 15∼20마리의 털이 필요하다. 한 동물단체 조사에 따르면 거위와 오리는 일생 동안 최소 5번에서 최대 15번 털을 뽑힌다고 한다. 죽은 뒤에 털을 뽑으면 한 번밖에 털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산 채로 털을 뽑는다.

이런 잔인함은 2010년 독일 동물복지운동단체 포포스(Four Paws)가 헝가리 거위농장의 실상을 폭로하면서 알려졌다. 라쿤 털 역시 생산과정에서의 잔인함 때문에 논란이 많다. 이렇듯 동물학대 논란이 확산되자 의류 제조업자들은 앞다퉈 ‘윤리적 생산’에 나섰다. 명품 브랜드들이 먼저 인조 모피로 옷, 가방을 제작하고 나섰고 패딩계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노스페이스 등 아웃도어 업계도 ‘책임 다운 기준(Responsible Down Standard)’이라는 인증마크를 도입했다. RDS란 동물학대를 하지 않고 사육, 도축, 세척 및 가공 등 깃털 생산부터 완제품을 만들기까지 모든 단계에서 윤리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받을 수 있는 글로벌 인증이다.

이처럼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서 동물윤리 의식이 높아지면서 ‘입는 채식주의’ 패션 열풍도 함께 불고 있다. 동물 털 대신 나일론, 폴리에스터 등을 충전재로 사용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올겨울에는 일명 ‘테디베어 퍼’ ‘뽀글이’ 등으로 불리는 페이크 퍼(가짜 털) 제품들이 관심을 끌었다.

2013년부터 유럽연합(EU)은 화장품 완제품 및 원료 생산에 있어 동물실험을 금지했을 뿐만 아니라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 판매 자체를 금했다. 한국은 2017년 2월부터 시행된 화장품 시행령에 따라 동물실험 화장품의 수입 및 유통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생산 제품이라도 수출되었다가 역수입되는 제품은 국내 동물실험 제한 대상에서 벗어나는 등 여전히 구멍이 넓은 상황이다. 소비자가 먼저 착한 소비, 가치 소비에 나서야 한다.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야말로 동물복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인식을 바꿀 수 있다.

허성환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구스다운#거위털#롱패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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