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차진아]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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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든, 화이트리스트든 정파적 이해관계로 차별한 것
민주주의에 반한다는 본질 같아… 정권마다 관행 굳어진 ‘코드 인사’
공무원 중립성·국가경쟁력 해친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색깔에 대해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많다. 특히 흰색-화이트는 선(善), 검은색-블랙은 악(惡)의 상징인 것처럼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런 차이를 보인다. 하지만 진실로 차이가 있는가.

백인이 천사가 아니고 흑인이 악마가 아니듯 화이트리스트는 정의로운 것, 블랙리스트는 불의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할 공직자 인사에 정파적 친소관계를 고려한 리스트가 작성됐다. 불이익을 주기 위한 블랙리스트건, 특혜를 주기 위한 화이트리스트건 간에 공정한 인사, 공직자의 정치적 중립을 해친다는 점은 똑같다. 그런데 일각에선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불법이고, 문재인 정부의 화이트리스트는 합법이라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 인권 문제에서도 유사한 혼란이 있었다. 인권을 ‘자유권’ 중심으로 이해하던 시기에는 인권침해란 이미 갖고 있는 권리를 뺏거나 축소시키는 것으로 이해됐다. 따라서 특정인에게만 권리나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사회권’이 보편적인 권리가 되면서 인식이 달라졌다. 어떤 사람에게 권리나 혜택을 주면서 다른 사람에겐 자의적으로 이를 주지 않는 것, 이 자체가 불합리한 차별이며 인권침해라고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

과거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계 인사들에 대한 정부 지원에 차별을 둬서 문제가 됐다. 물론 공무원이 차별받은 사례가 있었지만 당시 블랙리스트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게 된 계기는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때문이었다. 이처럼 정부 지원도 합리적 기준 없이 차별적으로 이루어질 경우, 정의에 반하는 것이며 불법으로 본다. 그렇다면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직업공무원을 대상으로 성향을 분석하여 불이익 또는 혜택을 주는 것은 어떠한가. 그리고 업무 수행의 계속성과 안정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임기를 보장한 공직자를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로 분류해 임기 종료 전에 사퇴 압력을 가하고 특정인을 위해 공모 절차에 개입하는 것은 어떤 문제를 낳겠는가.

일각에선 이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로서 정상적인 권한 행사이고 문화계 인사에 대한 차별적 지원을 위한 블랙리스트 사례와는 다르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어긋난다. 민주주의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독선적으로 행사하지 못하도록 다양한 기준과 통제장치를 두고 있으며, 이를 통해 제왕적 대통령의 탄생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공직자에 대한 인사권을 마치 불가침의 성역처럼 여긴다면 민주주의 사회라 할 수 없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문제인데 임기가 보장된 공직자에 대한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는 정말 아무 문제가 없는가. 이러한 주장은 블랙리스트나 화이트리스트를 통한 공직자 인사권 남용이 국가질서 전체에 얼마나 심대한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간과하고 있다. 최근 국회 인사청문 결과를 무시한 고위공직자 임명 강행에 대해 많은 우려와 비판이 있다는 점, 이와 관련해 인사청문회 강화를 위한 개헌 주장까지도 나오고 있다는 점을 결코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이후로 코드 인사가 이른바 보수정권,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공공연히 행해지면서 공적 인사의 원칙과 기준이 무너졌고, 그로 인한 문제의 심각성이 간과돼 왔다. 대통령의 인사권을 포함하여 대통령의 모든 권한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한 것이고 국민을 위해 행사해야 하며, 특정한 정파적 이해관계가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모든 인사를 새로 해야 한다는 주장은 민주주의의 본질에 반한다. 공적 인사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의 선발이며, 그 기준은 업무능력(전문성)과 도덕성이라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정파적 친소관계는 그 어느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를 근거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불이익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화이트리스트를 만들어 혜택을 주는 것도 민주주의와 정의에 반하는 것이며, 국가경쟁력을 좀먹는 것이다. 과거 정권의 잘못된 관행을 핑계로 스스로의 잘못을 덮고 정당화하려는 시도는 국민을 더욱 실망시킬 뿐이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블랙리스트#화이트리스트#중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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