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바닥 삶의 희망, 인문학서 찾고 싶다”… 노숙인 26명 성프란시스대학 입학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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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간 철학-문학-예술사 등 배워… “베풀고 봉사하는 삶 거듭날 것”

27일 오전 노숙인의 대학인 성프란시스대학 입학식을 마친 입학생들과 교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제공
27일 오전 노숙인의 대학인 성프란시스대학 입학식을 마친 입학생들과 교수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제공
“5년 전 부모님이 사고로 돌아가시고 막살았습니다. 꿈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인문학 공부로 저 자신의 부족함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길 희망합니다.”

27일 노숙인의 대학인 성프란시스대학 입학식을 마친 강민구 씨(27)는 이 대학에 지원한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강 씨는 공익근무요원이던 2014년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었다. 하루아침에 혼자가 돼버린 강 씨는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는 그때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다니던 대학도 자퇴한 강 씨 곁에 그의 외로움과 우울함을 달래줄 사람은 없었다. 강 씨는 거리로 나왔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그를 꺼내준 것은 일이었다. 노숙인의 자활과 자립을 돕는 서울시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가 그에게 사회적 기업 ‘두바퀴 희망자전거’를 소개해줬고 여기서 버려진 자전거를 수거해 수리해서 재활용하는 일을 배웠다.

이곳에서 강 씨는 두 번째 도약의 기회를 맞았다. 성프란시스대학 수료생인 두바퀴 희망자전거 대표와 공장장의 추천으로 이 대학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올해 입학생 가운데 가장 젊다. 강 씨는 “인문학 공부는 제 삶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 철학과 문학을 배워 희망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성프란시스대학 15기 입학식에는 노숙인 신입생 26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다음 달부터 1년간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철학 한국사 예술사 문학 글쓰기 등을 배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동훈 교수가 예술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안성찬 교수가 문학을 가르친다.

입학생 대표인 최모 씨는 “지난 세월 좌절과 실망, 분노 속에서 주사를 부리고 타인에게 불쾌함을 줬다면 이제는 사랑을 베풀고 봉사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며 “초심을 잃지 않고 모두 함께 끝까지 수업을 들어 풀꽃처럼 향기를 품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고 인사말을 했다. 수료생 대표인 권모 씨는 “1년간 인문학을 공부했다고 많은 변화가 생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분명히 변하는 것은 있다.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찾길 바란다”고 환영사를 했다.

2005년 1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와 삼성코닝정밀소재(현 코닝정밀소재)가 지원해 문을 연 성프란시스대학에서는 이달까지 노숙인 337명이 공부했다.

이날 입학식에는 성프란시스대학 총장 김성수 성공회 주교, 학장 여재훈 신부, 코닝정밀소재 강중근 전무가 참석했다. 김 주교는 “공부해서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겠다는 꿈을 가지길 바란다. 남을 위해 공부하면 그 공부는 반드시 성공한다”고 당부했다. 코닝정밀소재는 지각하지 말라며 신입생들에게 손목시계를 선물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성프란시스대학#노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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