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꼰대 야당’으로는 정권교체 못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6일 15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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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은 분열로 망한다. 이미 정권을 뺏기고도 책임소재와 투쟁노선, 정당성 등등을 따지다 갈라지고도 모자라 또 찢어진다.

기득권은 있는 대로 누리며 야권 몰락에 기여했던 그때 그 사람들. 단절해야 할 과거와 끈질기게 연결돼 있으면서 예전과 똑같은 방식으로 권력투쟁에 골몰한다면, 20년 독재정권의 폭주를 막을 수 있을까.

차베스의 베네수엘라를 기억하는가

전당대회를 하루 앞둔 자유한국당 얘기가 아니다.

(왼쪽부터)자유한국당 김진태 황교안 오세훈 당대표 후보자. 동아일보DB
(왼쪽부터)자유한국당 김진태 황교안 오세훈 당대표 후보자. 동아일보DB


“조작 선거에 의해 대통령직이 강탈당했으므로 헌법에 따라 국회의장이 과도정부의 임시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한 달 전, ‘대중의 의지(VP)’당 소속 36세의 젊은 국회의원 후안 과이도가 이렇게 선언하기까지는 베네수엘라가 바로 그 꼴이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과 종종 비교된 우고 차베스가 지배했던 이 나라는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2006년 KBS가 주말 황금시간대에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이라는 일요스페셜을 내보낼 만큼 ‘21세기 사회주의’에 꽂힌 좌파가 득세했기 때문이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교수 시절이던 2007년 민주노동당 대선전략 토론회에서 “차베스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좌파 교수와 시민단체는 차베스 붐에 앞장을 섰다.

20년 독재집권은 지리멸렬한 야당 탓

노동자를 위한다며 해고를 못 하게 만든 노동법, 빈민층을 보호한다는 가격통제, 대학 무상교육과 주민평의회 등등 차베스가 2013년 숨지기까지 민심을 현혹시킨 포퓰리즘 정책은 후계자 니콜라스 마두로에게 그대로 이어졌다.

유가 하락에 살인적 인플레, 부정부패로 4년 내 지지율 30%를 넘지 못했던 마두로다. 그럼에도 작년 대선에서 승리한 건 지리멸렬한 야권 탓이 크다.

차베스 이전의 지배세력이 주류인 야권 지도자들은 당리당략과 정치공학, 창당과 탈당, 음모와 배신에 골몰해 민심을 얻지 못했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동아일보DB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동아일보DB
집권당 아닌 야당은 다 모인 민주연합회의(MUD)가 2015년 총선에서 의석 3분의 2를 얻는 대승리를 했음에도 이념과 노선, 정당성을 놓고 내분투쟁 하느라 대정부 투쟁은 뒷전이었다.

낡고 똑같은 얼굴로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작년 말까지 그 모양이었던 베네수엘라 야당이 어떻게 이렇게 돌변할 수 있었을까.

과이도라는 ‘신선한 피’ 덕분이다. 외신을 보면 “낡고 늙은 얼굴들이라면 불가능했을 대정부 투쟁에 과이도가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평가가 많다. 2011년 보궐선거, 2016년 지역구 선거에 당선된 과이도는 작년까지 거의 무명이었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카라카스=AP 뉴시스
베네수엘라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야당 지도자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 카라카스=AP 뉴시스

야권 대표도 아니다. MUD가 차지한 112석 중 그가 속한 VP당은 14석에 불과하다. 올 초 국회의장에 취임한 것도 MUD에 속한 야당이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순번 덕분이다.

그러나 과이도에게는 내부투쟁과 보이콧이 고작인 오합지졸 야권을 하나로 묶는 능력이 있었다. 차베스의 언론 탄압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다 VP당 창당에 참여한 그는 첫째가 되기보다 팀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기보다 결정을 해야 할 때 내릴 줄 아는 용기와 리더십을 지녔다.

야당 지도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VP당 대표 레오폴도 로페스의 힘이 컸다는 점도 중요하다. 지지율 1위를 달렸던 로페스는 민주화 시위 중 ‘무의식적으로 폭력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징역을 살다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로서 누리는 권력도 만만치 않을 터다. 그러나 그는 아내를 미국에 보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을 성사시키는 등 과이도가 임시 대통령으로 승인받도록 멘토의 역할을 다했다.

당대표 선출을 하루 앞둔 자유한국당을 보며 희망을 갖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새 얼굴은커녕 그때 그 사람들이다. 누가 대표가 되든 한국당은 과거로부터 놓여나기 힘들다. 박근혜 탄핵에 부역했다는 ‘도로친박당’ 비판은 차라리 약과다.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군중들의 시위. 카라카스=AP 뉴시스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베네수엘라 군중들의 시위. 카라카스=AP 뉴시스


‘신선한 피’를 위해 물러설 수 있는가

그중에서도 한 사람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공안검사 꼰대, 또 한 사람은 그보다는 젊어도 태극기부대 꼰대 같은 이미지다. 민심 여론조사에선 당심(黨心)을 앞선 오세훈이 2위라도 할지 의문이라는 얘기가 번진다.

그러나 베네수엘라의 로페스도 늘 파벌을 만드는, 오만하고 권력욕에 사로잡힌 정치인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것도 위키리크스에 공개된 미국 외교관의 평가에서다. 그랬던 로페스가 비록 연금 중이기는 해도 자신의 욕심을 접고, 과이도의 멘토 역할을 충실히 함으로써 독재 타도에 희망을 안겨 줄 수 있었다.

내일 탄생하는 한국당 당대표에게 당부하고 싶다. 신선한 피를 과감히 수혈하시라. 내가 아니면, 우리 편이 아니면 안 된다는 욕심을 버리시라. 다른 당을 합당시키려 분란을 자초하지 말고 한 명이라도 더 힘을 모으는 ‘연대’에 힘쓰시라. 그리하여 당을 새로운 기운으로 가득 채운다면 한국당에 민심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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