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한원곤]軍의료, 중증 환자는 민간이 담당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1일 03시 00분


코멘트
한원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
한원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
한국이 가장 많은 발전을 이룬 산업을 꼽자면 가전, 스마트폰, 자동차, 조선 등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대부분 의료 분야를 간과하고 있다. 필자가 30여 년 전 미국 뉴욕의 슬론케터링 암센터에서 연수할 당시 수술을 참관하면서 한국의 외과의사는 미국보다 50년, 일본보다 30년 정도는 뒤떨어졌다고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거의 모든 분야를 따라잡았다. 몇몇 수술은 오히려 세계 정상급이다. 수술이 개복술에서 복강경, 로봇수술로 바뀌며 패러다임이 변했고 그에 대한 대처를 잘해온 덕분이다.

이렇듯 민간 의료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지만 군 의료체계는 발전하지 못했다. 복무기간 단축과 장병들의 복지 수준 향상, 최근 대체복무에 관한 사회적 합의에 이르기까지 군은 지난 70여 년간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군 의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특수성과 폐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필자는 40년 전 군의관으로 복무했다. 이후 일생을 의료계에 종사하고 있다. 민간 영역에서 지켜본 군 의료는 2006년 이후 ‘군 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지속적으로 군 보건의료 발전계획을 수립했지만 체감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의료시스템 개편은 실행됐다고 보기 어렵다.

군의 진료 역량은 민간 의료의 발전 추세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군 의료의 질과 신뢰 하락은 장병의 민간 병원 이용을 증가시키고 이는 군 의료진의 진료, 수술 경험 축적을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군이 민간 의료를 무작정 따라갈 수는 없다. 군이 반드시 해야 할 분야는 강화하고 나머지 분야는 민관 의료자원을 활용하는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총상 등 외상환자에 대한 자체 진료 종결 능력은 확보해야 하되 암, 뇌중풍(뇌졸중) 등 중증환자는 민간 병원에서 담당하도록 분담해야 한다. 또 생화학 및 집단 감염병 등 민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분야는 군이 자체적으로 대응 역량을 길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군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119구급대도 골든타임 안에 최적의 병원으로 장병을 이송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국방부는 올 1월 ‘장병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군 의료체계 구축’을 목표로 국방개혁 2.0 군 의료시스템 개편안을 최종 확정했다. 군 의무시설 현대화, 군병원 편의성 향상, 민간 병원 의료지원 확대, 국군외상센터 운영, 소방과의 응급후송체계 강화, 생화학 및 집단 감염병 연구역량 향상 등은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군 의료 인력의 전문성을 높이고 무자격 의료 보조행위를 근절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아이 1명도 채 낳지 않는 ‘초저출산 시대’에 접어들었다. 젊은 자녀를 군에 보내야 하는 부모들의 심정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군은 우리의 소중한 청년들을 건강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낼 의무를 지켜야 한다. 국가가 아픈 장병들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이번에는 꼭 마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한원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