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개발보다 인증에 더 시간 걸려… 규제 샌드박스 서류만 수백 쪽”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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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사업 뽑힌 ‘차지인’ 최영석 대표

최영석 차지인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많은 대박 사례를 만들어 내려면 스타트업이 샌드박스 신청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지인 제공
최영석 차지인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많은 대박 사례를 만들어 내려면 스타트업이 샌드박스 신청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차지인 제공
“규제 샌드박스 적용 사업에 선정되지 못하면 해외 수출로 사업 방향을 돌리려는 생각까지 했어요.”

14일 경기 성남시 사무실에서 만난 스타트업 ‘차지인’의 최영석 대표(47)는 가까스로 ‘막차’를 탄 사람 같았다. 전기차 충전플랫폼 기업인 차지인은 11일 규제 샌드박스 임시 허가 1호 사업으로 선정됐다. 2016년 4월 창업한 지 3년 만에 ‘불법 기업’이란 오명을 벗었다. 차지인의 임직원 21명도 함께 가슴을 쓸어내렸다.

선문대 스마트자동차학부 교수이기도 한 최 대표는 ‘서울시 전기차 민간 보급 1호’ 운전자로도 유명하다. 직접 전기차를 몰아보니 충전에 애를 먹는 일이 허다했다. 그가 충전 사업을 해보기로 결심한 이유다. 창업 이듬해인 2017년 포스코그룹 계열사의 투자와 대구시, 지능형자동차부품진흥원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1년 만에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일종의 전기 자판기인 ‘전기차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이다. 아파트나 마트 지하주차장에 있는 220V 콘센트에 두 뼘 크기의 이 기기만 설치하면 간단히 전기충전소가 된다.

술술 풀리는 듯했던 사업은 예기치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2017년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현행 전기사업법상 ‘전력 재판매’에 해당돼 사업을 허가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국전력만 전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한 현행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의 국가통합인증(KC)도 발목을 잡았다. 충전용 과금형 콘센트 기기는 이전에 없던 제품이라 안전성 기준을 찾지 못해 인증 과정에만 1년 4개월이 걸렸다. 제품 개발보다 더 긴 시간을 인증받는 데 쏟아부은 것이다. 최 대표는 “임직원 월급 줄 고민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면서 “흐르는 시간이 야속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사업 포기 직전에 놓인 최 대표에게 희망이 됐다. 이번 임시허가로 향후 2년 동안(1회 2년 연장 가능) 현행 법령에 구속받지 않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는 “규제혁신을 위한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하기 위해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직접 준비해야 할 보고서만 수백 쪽에 달해 스타트업으로서는 규제 샌드박스에 신청할 엄두도 못 낼 것 같았다”는 것이다.

최 대표는 “지난해부터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와 사업 규제 완화와 관련해 진행했던 회의록 등이 있어 직접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었지만 스타트업이 스스로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수백 쪽의 보고서에 담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다수의 대박 사례를 만들어 내려면 더 많은 스타트업이 쉽게 진입하도록 진입장벽을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정부 스스로 규제의 심판자가 돼야 한다는 경직된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고도 했다.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주체는 소비자입니다. 새로운 사업 모델에 문제가 있으면 소비자가 알아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송을 걸기 때문에 잘못된 스타트업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최 대표는 “정부는 스타트업이 뛰놀도록 판을 깔아주고 문제가 있는지 옆에서 지켜봐주는 역할만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성남=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
#규제샌드박스#최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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