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품격 잊은 ‘황후의 품격’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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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불태우고… 노골적 애정 행각
조현병 환자 편견 조장…콘크리트 반죽으로 위협

SBS ‘황후의 품격’에서 태후가 앵무새를 태우는 장면. 방송 후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황후의 품격’은 막장, 선정성 논란에도 수목 드라마 1위를 지키고 있다. SBS 제공
SBS ‘황후의 품격’에서 태후가 앵무새를 태우는 장면. 방송 후 동물 학대 논란이 일었다. ‘황후의 품격’은 막장, 선정성 논란에도 수목 드라마 1위를 지키고 있다. SBS 제공

“‘황후의 품격’ 제작진 처벌을 요청드립니다.”

지난달 10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이 같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전날 SBS 드라마 ‘황후의 품격’에서 태후(신은경)가 앵무새의 꽁지에 불을 붙여 태우는 장면이 방송됐기 때문이다. 시청자 500여 명이 청원에 동참했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선정적인 장면이 너무 많다”는 의견이 계속 올라온다. 이와는 별개로 SBS는 14일 종영 예정이던 ‘황후의 품격’을 4회 연장했다. 15% 이상의 높은 시청률 덕분이다.

동물 학대 논란뿐 아니라 ‘황후의 품격’은 방영 초부터 막장, 선정성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19세 이상 시청가’로 등급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다. 방송사 자체 드라마 심의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1일 전체회의를 열고 ‘황후의 품격’에 법정제재인 ‘주의’를 의결했다. △태후가 테러범을 “조현병 환자”라고 언급해 편견을 조장했고 △황제(신성록)와 비서(이엘리야)가 욕조에서 노골적인 애정 행각을 벌이거나 △태후가 비서를 결박한 채 콘크리트 반죽을 쏟아부으며 위협하는 등 6개 장면이 문제가 됐다. SBS 심의실은 해당 장면이 방송되기 전 제작진에 8건의 심의의견을 전달했지만 수정되지 않았다. 방심위는 “(선정적 장면을)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한 것은 물론이고 청소년 시청 보호시간대에 재방송했다”고 밝혔다.

박영수 SBS PD는 “잔혹한 장면들은 짧게 묘사하려 노력했고 청소년 보호시간대에 방영된 재방송에는 편집을 더 했다”고 해명했지만 제재 이후에도 방심위에 들어온 ‘황후의 품격’과 관련된 민원은 20건이 넘는다.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관람 등급을 정하는 영화와 다르게, 드라마는 방송사 내부 사전 심의에 의해 결정된다. 20명 내외로 구성된 자체 심의팀이 방심위의 ‘방송프로그램 등급제 규칙’에 따라 주제, 폭력성, 언어 사용, 모방 위험 등을 고려해 등급을 정한다. 최근 MBC ‘나쁜형사’, OCN ‘손 the guest’는 드라마의 일부 또는 전체 회차가 19세 이상 시청가로 방영됐다.

방심위의 사후 규제가 본방송은 물론이고 재방송까지 방영된 뒤에야 이뤄지는 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선정적 장면들로 논란이 된 SBS ‘리턴’도 1, 2회를 19세 이상 시청가로 조정하라는 방심위의 등급 권고가 방송 한 달 뒤에 결정됐다. 한 지상파 전직 심의위원은 “심의팀의 의견이 구속력이 없어 제작진이 참고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드라마별 등급이 상이한 경우가 많아 시청지도에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세부적인 심의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황후의 품격#방송통신심의위원회#선정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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