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윤신영]과학기술계가 정말 일자리 만들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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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수소경제를 실현하는 데 필요한 신규 연구과제 공모를 12일부터 시작했다. 지난달 17일 공개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을 실현하기 위한 후속 조치다. 올해 121억 원을 수소 생산과 저장에 관한 기초 연구 과제에 투자하며,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5년간 이어가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공모하는 연구 주제를 보니 매우 구체적이었다. 이름도 어려운 ‘알칼라인 수전해(물 전기분해)’, ‘고분자전해질 수전해’, ‘액상유기화합물 수소저장’ 등 세 분야를 연구하는 연구단을 하나씩 지원한다고 한다. 그 외에 ‘태양광으로 물을 분해해 수소 생산을 하는 수소충전소’도 독립 주제로 따로 과제를 냈고, 나머지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안’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공모 받는다고 돼 있다.

주요 과제 몇 가지를 거의 세부과제 수준으로 자세히 공고하고 있어 의아했다. 수소 생산과 저장은 세계적으로도 아직 제대로 된 후보 기술이 없어 ‘미래기술’로까지 불리지 않던가.

담당 공무원에게 전화해 자초지종을 물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해오던 연구가 있었다. 요소기술이 개발돼 있어 이를 고도화하고자 낸 과제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오랫동안 연구를 해왔다는 말에 관련된 기술 검토 자료나 보고서가 있는지 되묻자, “기술 로드맵은 연말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2040년까지 620만 대의 수소차를 생산하고 수소경제 산업생태계로 사회 체질을 바꾸겠다고 전 국민에게 청사진을 제시했는데, 실현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될 관련 기술 자료는 나중이라니 의아함은 더 커졌다.

지난달 로드맵이 발표된 직후 일부 과학자도 의문을 제기했다. “이 정도 큰 계획을 세웠으면 실현할 기술에 대한 근거가 있지 않겠느냐. 보고서든 문서든 보여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는 한 과학자는 “돌아온 건 허술한 내용의 보고서 몇 장이었다”고 말했다. 기술적 검토가 불충분해서인지, 수소경제 로드맵은 지금도 곳곳에서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뭔가 급한 느낌이다. 기술로 사회와 경제의 골격을 바꾸겠다는 구상인 만큼, 기술을 충분히 검토하는 과정이 먼저 있었어야 한다. 그 이유를 짐작하다 로드맵 발표 보도자료 마지막에 시선이 갔다. ‘2040년에는 연간 43조 원의 부가가치와 42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혁신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혹시 일자리 창출에 대한 강박이 일을 서두르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전자제품’에 가까운 전기차와 달리, 수소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슷해 기존 자동차 산업의 일자리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자동차 전문가의 말도 어른거렸다.

수소만이 아니다. 최근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사업 자료를 보면 ‘일자리 창출’이 상투어처럼 붙는다. 일자리가 중요하고, 과학기술계가 그 마중물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 다만 본말을 뒤집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과학기술계는 조금 느긋하게, 중요한 사회 변화를 이끄는 토대로 남아 있으면 안 될까.
 
윤신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ashilla@donga.com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알칼라인 수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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