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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경증 환자 넘치는 응급실… ‘6시간 룰’이 눌러앉기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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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경증 환자 넘치는 응급실… ‘6시간 룰’이 눌러앉기 부추긴다

조건희기자 , 박성민기자 입력 2019-02-11 03:00수정 2019-02-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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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 환자 병상 부족 낳는 건보제도
“다른 증상은 없고, 두드러기 나신 게 전부죠?”

10일 낮 12시 40분경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 간호사가 침착하게 증상을 되묻자 40대 환자 A 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그렇다니까! 어제 먹은 케이크가 잘못됐나 봐.” A 씨는 별다른 지병도 없었고 팔에 난 두드러기는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경미했지만 “어서 병상에 눕혀 달라”고 재촉했다. 이 응급실은 중증 응급환자를 위해 고가의 장비를 갖춘 권역응급의료센터였지만 이날 이곳을 찾은 환자 18명 중 5명은 경증 환자였다.

고 윤한덕 중앙응급의료센터장(51)이 마지막 순간까지 고심했던 건 경증 환자가 응급실 병상의 72.3%를 차지하는 바람에 급박한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가 거리를 헤매다 숨지는 현실이었다. 이 병원에선 전날 저녁 경증 환자들이 병상을 점령한 탓에 중증 환자 20여 명이 예진실에서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상황이 벌어졌다. 간호사 채모 씨는 “더 급한 환자를 위해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면 난동을 부리는 경증 환자가 매일 6, 7명은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 응급실 체류 늘리는 ‘6시간 룰’ 손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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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경증 환자가 응급실에 북적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이른바 ‘6시간 룰’을 꼽았다. 이는 응급실에서 6시간 이상 체류하면 외래가 아닌 입원으로 분류돼 건강보험 진료비 중 환자가 부담하는 비율을 20%로 낮춰주는 규정이다. 진료비가 100만 원이라면 응급실에 5시간 59분간 머무른 환자는 일반 본인부담률(50∼100%)이 적용돼 50만∼100만 원을 내야 하지만, 6시간 이상 눌러앉으면 20만 원만 내면 된다.

보건복지부는 대형병원의 응급환자 과밀도를 낮추겠다며 2016년 1월부터 응급환자 분류등급(KTAS) 5개 중 4, 5급에 해당하는 비응급 환자에겐 진료 시간과 상관없이 본인부담률을 50∼100%로 무겁게 적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 대책이 적용되는 곳이 전체 응급실 517곳 중 권역 및 지역응급의료센터 153곳(29.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지역응급의료기관 등 364곳(70.4%)에선 여전히 의료진이 ‘치료가 끝났으니 비켜 달라’고 요청해도 버티는 환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다. 일부 육아 및 환자 커뮤니티에선 이를 ‘응급실 저렴하게 이용하는 꿀팁’으로 공유하고 있다.

비응급 환자가 응급실에 들르면 진료비와 별개로 ‘응급의료관리료’ 2만∼5만 원이 붙는다. 정부는 이 돈을 실손의료보험으로도 보장할 수 없도록 했지만, 금지 대상이 상급종합병원 응급실 42곳에 불과하다. 그나마도 2015년 12월 31일 이전에 실손보험에 가입한 환자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해외 선진국은 국내와 상황이 판이하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기본적으로 응급실에 가려면 구급차를 불러야 해 스스로 걸을 수 있는 경증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응급실이 극히 드물다. 미국의 한 교민 유튜버는 최근 응급실에서 6시간 진료를 받은 뒤 각종 검사비에 구급차 이용료까지 더한 총 1만5000달러(약 1686만 원)짜리 청구서를 받았다는 동영상을 올려 화제가 됐다. 허윤정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심사평가연구소장은 “환자가 ‘진료비 폭탄’을 맞는 사례는 없어야겠지만 경증으로 응급실을 찾는 걸 더 어렵게 만들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 응급 상담전화-‘달빛 보건소’ 활성화해야

응급실 의료진은 경증 환자 대다수가 ‘어쩔 수 없이’ 응급실을 찾는다고 믿고 있다. 일반인은 자신의 상태가 중증인지, 몇 시간 참았다가 다음 날 동네 의원에 들러도 되는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응급 상담전화 ‘1339’를 1998년 7월 도입했다. 하지만 긴급전화가 너무 다양해 헛갈린다는 지적이 나오자 2012년 6월에 1339를 없애고 상담 기능을 119에 통합했다. 문제는 119가 응급 상담을 해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고, 전화를 걸어도 상담원의 의학 전문성이 낮다 보니 제대로 된 상담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석주 부산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상담 기능이 구급·구조대를 신속히 출동시켜야 하는 119의 본질에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선진국처럼 119와 응급 상담전화를 다시 분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은 긴급출동 요청 전화와 별개로 환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확인해 적합한 응급실을 찾아주는 상담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또 미국과 캐나다는 야간 진료 클리닉이 활성화돼 있어 불필요하게 응급실에 들를 필요가 적다. 영국은 야간 및 휴일 진료 서비스를 공공의료의 개념으로 제공한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17개 시도가 야간 및 휴일 진료를 해주는 이른바 ‘달빛 보건소’를 한 곳씩만 시범 운영해 봐도 응급 환자 분산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becom@donga.com·박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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