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소연]목숨값이 참 싼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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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두 잔 값’ 안전교육 못 받아 컨베이어 벨트 사망-사고 계속돼
국가 방관에 위험의 외주화 심각
기업의 재하청 근로자 위험 방치
저비용 벌금 내고 안전지출 소홀… 김용균법 근거 무겁게 처벌해야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2월 5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 하청 직원이었던 김용균 씨가 사망한 지 58일 만에 장례 일정이 발표됐다. 당정이 공공 부문인 발전소의 하청 근로자 정규직화와 2인 1조 업무와 같은 안전조치 철저 이행을 약속했고 유족과 대책위원회가 이를 수용하면서 미뤘던 장례를 치르게 된 것이다. 고인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원래 2인 1조로 해야 하는 업무를 혼자 하던 중에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회사는 설비 개선 요구를 28번이나 묵살했었다고 한다. 밤샘 컨베이어 벨트 점검 작업이지만 손전등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아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고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는 1994년생, 스물다섯 살이었다.

2월 3일에는 인천에 있는 한 자동차공장에서 컨베이어 벨트를 점검하던 50대 노동자가 설을 앞두고 야간 근무 중 벨트에 끼어 숨졌다. 소위 김용균법이라 불린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의 일이다. 지난해 12월 26일에는 경북 문경의 채석장에서 작업을 하던 40대 노동자가 쇄석기 벨트에 끼어 숨졌다. 같은 날 충남 예산 자동차공장에서도 29세 노동자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숨졌다. 이런 사고를, 당장 기억나는 것만도 수십 건은 읊을 수 있다.

문제는 당연히 컨베이어 벨트가 아니다. 안전하지 않은 일터다. 안전에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목숨값이 싼 사회다. 우리나라의 일터에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안전에는 비용이 든다. 태안화력발전소가 설비 개선을 하려고 했다면 3억 원 정도가 들었을 것이라 한다. 서울 외곽 99m²(30평대) 아파트 한 채도 아니고, 0.5채 정도의 돈이면 막을 수 있었을 죽음이라는 말이다.

2인 1조로 일해야 하는 위험한 일터에 한 사람만 있는 경우는 매우 흔하다. 2교대로 12시간 일하는 야간근로자 한 사람의 일급은 최저임금으로 어림잡아 13만 원 정도다. 영화표 10장 정도 값이다. 일이 손에 익지 않은 신입 직원에게 안전교육을 하는 비용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의 시급을 합쳐 계산해도 몇만 원을 넘지 않았을 것이다. 또 흔히들 하는 비교를 가져오자면 커피 두어 잔 값이었을 터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안전에 책정하는 값은 이보다도 낮아, 충분히 예방할 수 있었을 참변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비용이라고 말을 했지만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드는 돈은 비용이라기보다는 필요한 지출이다. 안전에 돈 쓰기를 아까워하고 사람 목숨에 이토록 인색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국가가 이 지출을 충분히 부담하지도, 책임을 충분히 추궁하지도 않는 것이다. 발전소 같은 공공 부문조차도 비용 절감 운운하며 하청업체에 외주를 맡긴다. 국가가 더 안전하게 운영할 수 있는 공공 부문조차도 이 모양이니,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국가보다 돈을 더 쓰려고 할 리가 없다.

국가가 방관하고 안전 ‘비용’이 민간에 맡겨지면서 이미 위험의 외주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하청에 재하청에 재재하청에 단계를 거칠수록 회사는 영세해지고 안전 지출은 줄어든다. 원청은 최저가 입찰경쟁을 부추기고, 영세한 업체들은 비용 절감의 굴레에서 비숙련 비정규직 근로자를 고용해 이런저런 관련법을 위반하며 어떻게든 일이 ‘굴러는 가게’ 만든다. 기업, 특히 원청업체들은 산업안전보건법이나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큰 책임을 지지도 무거운 처벌을 받지도 않는다. 규정을 어기다가 운 나쁘게 적발되어 벌금을 내는 것이 미리 안전조치를 하는 것보다 ‘저비용’이다. 산업이 망한다, 기업이 망한다 시끄럽지만, 실제로 1년에 산업재해로 2000명이 죽어도 산재 사고 때문에 과징금을 내거나 손해배상을 하다가 망한 회사는 없다.

올 1월 산업안전보건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도급 제한이나 재하청 금지의 법적 근거가 드디어 마련되었다. 이제 안전을 위한 지출이 법대로 기꺼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목숨은 어떤 일터에서든, 더 비싸고 귀해야 한다.
 
정소연 객원논설위원·법률사무소 보다 변호사
#김용균#하청 근로자#산업안전보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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