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규제 움켜쥔 부처가 반대한다고 백지화, 이래선 하나도 못푼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9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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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같은 독점적인 기술은 내부거래 규제에서 제외하겠다며 입법예고까지 했던 정부가 하루아침에 입장을 바꿨다. 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특허를 보유한 기업이 기술적 전·후방 연관 관계가 있는 특수법인과 불가피하게 거래한 부품·소재 매출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내용의 기획재정부 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백지화됐다. 기재부가 재계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련한 규제완화 사안인데,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건 것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예외를 두면 편법이 생기고 대주주들만 이익을 본다는 이유에서다.

경제정책을 총괄 지휘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규제혁신 차원에서 추진한 것을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편법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무산시키는 걸 보면서 기업들은 과연 이 정부에서 혁파될 수 있는 규제가 몇 개나 될지 의문을 가질 것이다.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줘 그룹 내 기업들끼리 이득을 챙기고, 총수 일가에 이익을 제공하거나 승계 작업에 활용하는 부당한 내부거래는 엄격하게 단속해야 마땅하다. 부당 내부거래를 단속하는 주무 부처인 공정위가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기재부가 이 시행령 개정안을 추진한 데도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도 기술적 특성상 연관관계에 있는 계열사 간 거래는 내부거래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이 있다. 특허 같은 독점적인 기술에 대해서는 일정 기간 영업비밀이 외부로 새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현재 실시되고 있는 규제 가운데 안전, 환경, 중소기업 보호 등등 어떤 이유든 명분 없이 생긴 규제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또 이런 규제를 바탕으로 힘을 행사하는 공무원들로서는 부작용을 거론하며 규제 폐지에 난색을 표할 게 뻔하다. 일선 부처, 개별 공무원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규제를 풀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서 풀 수 있는 규제는 없다고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해당 규제가 시대의 변화에 맞는지, 그리고 규제했을 때와 풀었을 때 어느 쪽이 국민에게 더 이득인지를 판단하는 큰 틀의 시각과 반대를 돌파하는 추진력이다.

최근 부쩍 경제 챙기기에 나서는 대통령과 장관의 모습에서 정책 전환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왔던 기업들로서는 공정위의 강변과 이를 설득해내지 못하는 기재부의 무기력함을 보면서 적지 않은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경제 활력 찾기든 규제 완화든 백번 말로 하는 것보다 하나라도 실천으로 보여주는 것이 필요한 때다.
#특허#내부거래 규제#세법 시행령 개정안#기획재정부#공정거래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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