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 푼다더니 한달만에 없던 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재부 지난달 “특허제품 거래는 일감몰아주기 과세 대상서 제외”
입법예고案, 공정위 반대로 무산…규제혁신 첫발도 못떼고 우왕좌왕

대기업 총수 일가 기업이라도 독점적 기술 때문에 부득이하게 해당 대기업과 거래할 경우에 한해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빼주도록 한 세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표 한 달 만에 ‘없던 일’이 됐다. 기획재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개정안을 마련해 공개하자 공정거래위원회가 실태조사와 관계부처 사전협의가 없었다며 강력히 반발해 입법예고까지 한 사안이 손바닥 뒤집듯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기업인들과 만나 규제혁신을 약속했지만 핵심 경제부처들의 엇박자까지 불거지면서 규제개혁이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갈지(之)자 행보를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고 일감 몰아주기 예외조항을 삭제한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을 의결했다. 이 예외조항은 지난달 31일 관계부처 차관회의 직전 삭제된 뒤 이날 국무회의에 상정됐다. 입법예고안이 차관회의에도 오르지 못한 채 삭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는 게 관가의 설명이다. 이날 비공개로 이뤄진 국무회의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일감 몰아주기 관련 예외조항이 빠진 것에 대해 “부처 협의 과정에서 이견이 있었다”고 국무위원들에게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지난달 8일 기재부는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규정과 관련해 ‘한 법인이 기술적 특성상 전후방 연관관계가 있는 특수관계법인과 불가피하게 부품, 소재 등을 거래한 매출액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증여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특허 등 기술력이 있는 기업은 ‘일감 몰아주기 과세’의 예외로 간주하겠다는 뜻이다. 그동안 재계에선 특허나 독점기술 때문에 불가피하게 관계사와 거래하는 경우에도 일감 몰아주기로 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해 왔다. 2017년 11월 국회 조세소위도 부대의견으로 ‘일감 몰아주기 과세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비하라’고 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대기업이 특허권을 총수 일가 기업에 넘긴 뒤 일감을 몰아줄 수 있어 결국 대주주가 이익을 보게 된다며 반대했다. 입법예고 전 실태조사나 부처 간 협의를 소홀히 했다는 절차상 오류도 이유로 들었다. 기재부는 해당 조항 개정을 보류했다. 언제 다시 추진할 것인지 등 향후 계획은 밝히지 않았다.

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김준일 기자
#기업 규제#규제혁신#일감 몰아주기#정부 정책 엇박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