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벤처스 이준표 대표 “창업환경 탓만 말고 변화 주도해야 게임체인저 될 수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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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뱅크벤처스 이준표 대표가 말하는 스타트업 성공조건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창업가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좋은 팀을 만들어 주는 것도 투자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10년째 국내 스타트업에 젊은 인재를 연결해주던 대학생벤처기사단(UKOV)을 올해 해외 업체로 넓힐 예정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는 “창업가에게 부족한 점을 보완해주고 좋은 팀을 만들어 주는 것도 투자가의 역할”이라고 했다. 10년째 국내 스타트업에 젊은 인재를 연결해주던 대학생벤처기사단(UKOV)을 올해 해외 업체로 넓힐 예정이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지난해 5월 일본 도쿄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손정의 회장(62)은 한국에서 찾아온 한 40대 벤처 기업인을 엘리베이터 앞까지 정중하게 배웅했다. ‘아시아의 스냅챗’이라 불리는 동영상 채팅 애플리케이션 스노우의 김창욱 대표(42)였다. 소프트뱅크 등으로부터 5000만 달러(약 555억 원) 투자를 유치한 김 대표가 손 회장을 처음 방문한 길이었다. 김 대표는 이날 30분 남짓한 프레젠테이션(PT) 시간 대부분을 스노우가 아니라 아직 개발단계인 3차원(3D) 아바타 앱 설명에 할애했다. 손 회장은 “앞으로 3D 아바타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다”고 한참을 맞장구쳤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이준표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37)는 전날까지 김 대표에게 “잘나가는 스노우에 대해 PT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던 자신의 안목을 탓해야 했다. 프로는 프로를 알아본다고, 지난해 8월 출시된 3D 아바타 제작 앱 ‘제페토’는 3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다운로드 1200만 건을 넘으며 15개국에서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강남구 소프트뱅크벤처스 본사에서 만난 이 대표는 “좋은 투자자의 덕목은 창업자의 도전을 독려하는 것”이라며 “계획뿐이던 사업의 미래와 가능성을 읽고 창업자보다 더 흥분하던 손 회장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프트뱅크벤처스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에서 유일하게 초기 벤처 투자를 맡는 벤처캐피털(VC) 업체다. 2000년부터 한국 미국 중국 등 총 10개국 250개 업체에 6800억 원을 투자하며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발굴해 성장시키는 스케일업 역할을 해왔다. 이 대표는 자신이 창업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에빅사)와 동영상 검색업체(엔써즈)에 투자받은 것을 인연으로 2015년 아예 소프트뱅크벤처스에 합류했다. 자신이 창업한 회사는 LG유플러스와 KT에 매각했다.

이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스케일업에 대해 “환경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전 세계를 다녀 보면 한국만큼 창업 정책자금이 많고 투자받기 좋은 나라가 없다. 기존 산업이 작지 않아 혁신 기회도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는 “창업가들이 규제 때문에 못한다고 하지 말고 힘들더라도 부딪혀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온라인 거래와 결제 비중이 한국보다 높은 곳은 중국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은 핀테크(금융), 모빌리티(운송업) 등 기존 산업 질서를 재편해 시장 주도권을 가지는 게임체인저가 될 기회가 그만큼 많다”고 했다.

그는 스타트업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규제에 대해 비판도 했다. 10년 전 일이지만 정부의 규제정책으로 애플의 아이폰을 미국에서 출시된 지 2년이나 지나 한국에 들여왔고, 이 때문에 인터넷 주도권을 모바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는 게 이 대표의 시각이다. 최근 유튜브, 넷플릭스가 선전하자 이를 규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도 “마치 ‘구한말 쇄국정책’ 같다”고 했다. 기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유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행태는 사라져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주장이다.

이 대표는 “규제로 인한 갈등 해결의 핵심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걷어내는 것이다. 정부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해 기존 산업군이 생존의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지만 그러다 보면 자칫 새로운 싹을 잘라버릴 수 있다. 기존 산업군도 변화를 통해 자체적인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이준표#스타트업#창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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