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원영신]체육계 성폭력, 스포츠 순기능 좀먹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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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영신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장
원영신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장
요즘 체육계 성폭행 사건을 대하며 선배 여성체육인으로서 마음이 무겁다. 몇 년 전 정부 주도 스포츠위원회 회의에서 한 중진 남성위원은 “여성이 차별받는 것은 여성의 잘못”이라고 야단을 치듯 말했다. 그에게 사과는 받아냈지만 사실 그 말이 틀리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 성차별의 근본적 요인으로는 문화적 전통, 차별적 성역할 사회화, 승리지상주의와 계급관계를 강요하는 체육계 등이 꼽혀 왔다. 하지만 여성 체육인들이 수동적으로 대처했다는 생각도 든다.

1896년 근대 올림픽을 창시한 쿠베르탱도 표면적으로는 자유와 평등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여성이 스포츠에 참가하는 것은 부적절하고 추하며 상스럽다”며 여성의 올림픽 참가를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1900년 파리 올림픽에서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골프, 테니스에 여성 선수들이 참가하기 시작해 페미니즘의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이제 여성 체육인도 여성인권, 평등을 위해 앞장서야 할 때가 왔다. 우리 스스로 보호하고 권익을 찾아야 한다. 여성권익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며 미국에서는 1972년에 타이틀 나인(Title Ⅸ)이 제정됐다. 이는 모든 학교에서 성차별을 금지하고 남녀에게 동등하게 스포츠 참여 기회를 보장했다. 여성 코치, 행정가, 선수에 대한 동등한 보수부여 규정도 있었다.

1996년 영국의 브리튼에서 열린 ‘제1회 여성과 스포츠에 관한 국제회의’에서는 여성이 스포츠에서 경험하는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여성스포츠전략이 추진됐다. 이 회의는 모든 스포츠 영역에서 여성 비율을 30% 이상으로 한다는 조항을 결의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30% 이상을 권장한다’는 말로 인심 쓰는 척하고 있다. 실제 스포츠의 가장 값진 가치는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해 끝까지 싸운다는 페어플레이 정신에 있다. 스포츠는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다. 혹자들의 잘못으로 스포츠의 순기능과 가치를 훼손하지 말기 바란다.

이제 임기응변은 그만 끝내고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체육계 구조를 재정비해야 한다. 한국 여성 선수들의 활약이나 메달 수에 비해 체육계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고 주도권을 가진 여성 인력이나 여성 지도자는 극소수이다.

앞으로 한국 체육계는 여성 임원 및 코치, 감독 등 지도층 일자리를 전체의 30% 이상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의무화해야 한다. 또 여성 선수에 대한 성폭행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지도자는 영구적으로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 미성년 선수에 대한 성폭행은 살인죄에 준해서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범죄를 저지른 체육인은 체육계에서 퇴출시키고 해외 진출도 제재해야 한다. 체육단체장에는 체육인 출신 비율을 높여 책임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어린 여성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여성도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의 터전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원영신 연세대 스포츠응용산업학과 교수·한국스포츠미디어학회장
#체육계 성폭행#여성 체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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