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꾼 예쁜 사과, 왕겨 안에 담았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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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만에 LP 낸 김창완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SBS 사옥 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음악가 김창완 씨가 자신의 통기타와 새 앨범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김창완밴드의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꽃이에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SBS 사옥 내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음악가 김창완 씨가 자신의 통기타와 새 앨범을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김창완밴드의 멤버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꽃이에요.”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잘 가꾼 예쁜 사과니까 포장이 잘된 상자에 넣고 싶었어요. 근데 문득 왕겨에서 꺼내 먹던 옛날 겨울 사과 생각이 난 거예요. 그 사과향이 사무치게 그리운 거예요.”

4일 오전 서울 양천구 SBS라디오 스튜디오에서 만난 음악가 겸 배우 김창완 씨(65)가 ‘산할아버지’ 이야기라도 들려주듯 말했다. 특유의 사근사근한 목소리로 동화 구연처럼 꺼낸 말은 사실 음반 얘기. 사과는 음악, 포장이 잘된 상자는 CD, 왕겨를 채운 상자는 LP레코드를 가리켰다.

김창완밴드가 최근 10주년 기념 LP 앨범 ‘The Flowers of Time(시간의 꽃들)’을 냈다. 김 씨가 새 LP를 낸 것은 무려 27년 만이다. “마지막으로 LP로 낸 게 산울림 12집(1991년)이었으니 참 오래됐네요.”

이번 앨범은 김 씨가 직접 고른 김창완밴드의 대표곡 19개를 두 장의 LP에 담은 음반. 김 씨는 산울림 해체 뒤 2008년부터 김창완밴드를 결성해 활동해왔다.

“산울림의 음악이 즐거움으로 칠한 슬픈 수채화라면, 김창완밴드의 음악은 우울로 칠해진 기쁨의 유화입니다. 그림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레파스화이고요.(웃음)”

음반의 표지와 속지 그림은 모두 김 씨가 직접 그렸다. 그림 제목은 ‘시간의 꽃’과 ‘피아노’. “음악을 커다란 캔버스에 싸서 전해드리고 싶었기에 LP를 택한 것도 있죠.” 첫 장엔 ‘내가 갖고 싶은 건’ ‘E메이져를 치면’ 등 뭉클한 발라드를, 두 번째 장엔 ‘중2’ ‘금지곡’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feat. 잠비나이) 등 묵직한 록을 실었다.

김 씨는 이번 LP 발매를 ‘불꽃놀이처럼 화려하나 허망한 디지털 음악 시대에 대한 저항이자 도발’로 봐줘도 좋다고 했다. 그는 “인간은 음악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어디서나 듣고 싶었고 그 꿈을 마침내 디지털 기술로 이뤘지만, 음악의 본질이 실은 무형이라는 진실을 마주한 순간 실망하게 됐다”고 풀이했다. “완벽에 대한 아쉬움, 모자람에 대한 갈구가 LP를 다시 찾게 만든 것 아닐까요.” 이번 음반은 CD나 디지털 음원으로 발매되진 않는다.

김 씨는 올해 3년 만의 신곡 발표도 준비하고 있다. 5년 넘게 진행한 콘서트 투어 ‘뭉클’대신 새로운 공연 시리즈도 선보일 작정. “뭉클 콘서트의 부제는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는 소리’였어요. 올해부터는 ‘살과 살이 부딪히는 소리’를 주제로 삼아볼까 합니다.” 더 작은 무대에서 관객과 더 긴밀히 교감하기 위해 그는 요즘 매일 기타를 잡고 창작과 편곡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김창완#산울림#the flowers of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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