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진 필적]〈40〉비판적 공상가 뒤샹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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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를 작품화한 ‘샘’과 같은 기성품을 활용한 ‘레디메이드’ 오브제를 제시해 20세기 초반 미술계를 뒤흔든 마르셀 뒤샹. 그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어 현대미술의 아버지라고 여겨진다. 뒤샹이 없는 개념 미술은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현대미술에서의 뒤샹은 서양 철학에 있어서 플라톤과 같은 존재라고 불릴 정도다. 뒤샹은 레디메이드 외에도 예술과 기계의 결합을 추구했고 ‘로즈 셀라비’라는 여성의 가명을 사용하는 등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했다. 그의 글씨는 대단한 업적만큼이나 특이하다.

‘b’의 마지막 부분 고리 형태는 상상력을, ‘h’의 고리가 작은 것은 공상가임을 말해준다. 그는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이는 수용성’을 가졌다. 그의 상상력은 비판적 사고와 함께 빛을 발한다. 매우 빠른 글씨의 속도는 명석함을 알려주는데 ‘w’가 각지게 구성돼 있어 분석적 사고를 하며 머리가 가슴을 지배했던 것을 알 수 있다. ‘s’의 날카로운 윗부분으로 보아 비판적 성향을 갖춘 독설가였을 것이다. 어린 시절 명문학교에 다녔고 수학경시대회에서 1등을 한 뒤샹은 날카로운 지성으로 유명했다. ‘k’의 첫 번째 선이 길고 ‘b’가 굳게 닫혀 있는 것은 모험적 기업가로서 사업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의 가로선이 매우 긴 것은 강한 인내심과 의지를 말해주고 ‘M’의 마지막 획이 기초선 아래까지 내려오는 것은 완고함을 의미한다. 그는 “예술가라면 진정한 대중이 나타날 때까지 50년이고 100년이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바로 그 대중만이 제 관심사”라고 했다. 정사각형의 ‘r’는 기계조작 기술이나 손재간이 있음을 알려준다. 뒤샹은 과학, 공업, 기하학, 물리학 등에서 착안한 기계적 실험을 작품에 반영하여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결합을 시도했다. ‘D’ ‘R’의 위쪽이 열려 있어 말하기를 즐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는 “나의 취향이 굳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단히 나 자신을 부정하고자 애썼다”고 했다. 혁명가 뒤샹은 이렇게 탄생했다.
 
구본진 변호사·필적 연구가
#마르셀 뒤샹#레디메이드#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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